김대중의 김영삼 지지 연설이 박정희 정권의 몰락으로 이어져

[뉴스케이프 공희준 기자] DJP 연합이 없으면 정권교체도 없었다

「분노의 메아리」는 소장파 국회의원 김대중의 중용적 면모가 담긴 연설집이다. 이미지 출처는 삼성출판박물관 누리집이다.

장신기(이하 장) : 김대중 대통령은 진보적 생각을 가진 인물들의 현실감각이 부족한 현상을 굉장히 안타까워했습니다. 저는 김대중 대통령이 김구 선생을 통해 이승만 전 대통령의 모자람을 보았고, 이승만을 통해서는 김구에게 아쉬웠던 부분을 발견했다고 생각합니다.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겸비해야 한다는 주장은 김대중 대통령이 1960년대부터 이미 꺼냈던 화두였습니다. 「분노의 메아리」는 김대중 대통령이 제6대 국회의원으로서 의정활동을 수행하며 발언했던 내용들을 모은 연설집입니다. 1968년에 초판이 출간된 이 책자의 목차에 서생과 상인 간의 조화가 책의 주요한 주제로 거론되었습니다.

공희준(이하 공) : 김대중 대통령으로 하여금 그와 같은 소신을 굳히도록 이끈 다른 계기도 있지 않을까요?

장 : 김대중 대통령은 4‧19 시민혁명의 성과물로 수립된 제2공화국의 장면 정부가 혁신세력의 지나치게 성급한 요구 때문에 결과적으로 적잖이 약화되는 사태를 목격했습니다. 장면 정권에서 정부 대변인 역할은 정헌주 당시 교통부 장관이 담당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집권여당이었던 민주당의 대변인 역할을 맡았습니다. 빼어난 문필가이자 뛰어난 달변가였던 김대중 대통령은 각종 토론회에 참석해 장면 정부의 입장을 옹호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그러한 역할을 소화하면서 혁신세력의 과도한 이상주의가 나라의 장기적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달았던 듯싶습니다. 저는 한국전쟁의 비극, 장면 정부의 붕괴, 그리고 1964년에 불거진 한일협정 파동의 세 가지 일들이 김대중 대통령이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겸비하도록 만든 중요한 전기로 작용했으리라고 봅니다.

공 : 한일협정 체결 당시에 김대중 대통령이 상당히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렸던 것으로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장 : 바람직한 정치 리더십은 이상과 현실의 균형 위에 선 리더십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야당 강경파들의 선명한 목소리에만 의지해서는 냉혹한 국제관계의 현실을 돌파해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그가 일본과의 정식 수교관계가 맺어질 필요가 있다고 믿은 이유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철옹성 같은 군부독재와 맞서 싸우려면 제도권 내의 야당과 장외의 재야세력이 힘을 합쳐야만 한다고 판단한 일도 현실론과 이상론을 조화시킨 결과였습니다. 재야에 계신 분들은 제도권 안의 기성 야당을 불신하는 성향이 뚜렷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야당과 공조하지 않으면 군사정권에 대항해 힘 있고 효과적인 투쟁을 전개하기 힘들다면서 재야인사들을 설득하는 데 나섰습니다.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이 어울려 빚어낸 최고의 빛나는 결실은 1997년 대선 국면에서의 김대중-김종필 연대, 즉 DJP 연합이었습니다.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는 ‘유신잔당’으로 불리며 수많은 국민들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당해온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런 JP와 손을 잡는다는 건 민주화운동에 합류하고 헌신했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정권교체는 시대의 당위이자, 국민의 명령이었습니다. 보수의 원조이자 충청권의 맹주인 김종필 총재와 제휴하지 않으면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에게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다른 마땅한 방법이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장신기 박사는 대학생 신분이었던 자신 또한 DJP 연합에 매우 부정적이었다는 소회를 인터뷰 이후의 뒤풀이 자리에서 필자에게 개인적으로 들려주었다.

공 : 저도 1997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에게 투표를 하기는 했지만, 김종필 총재의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생각하면 솔직히 썩 내키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그때 상황에서 이회창 후보는 죽어도 찍기 싫었지만요.

장 : 선배님처럼 DJP 연합에 부정적 견해를 품은 분들이 민주진보개혁 진영에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위대한 정치 지도자의 카리스마는 시대적 소명의 실천을 위해서 때로는 지지층의 바람과도 어긋나는 선택과 결단을 할 때 그 진가가 발휘되기 마련이라고 봅니다. 정치인들에게 확고한 리더십이 왜 요구되겠습니까? 시대와 역사가 바라고 요구한다면 지지자들을 그들이 이제껏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미지의 길로 담대하게 견인할 수 있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층을 DJP 연합의 길로 인도해 우리나라 사상 최초의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정권 교체를 이룩한 일은 정말 멋진 역사의 명장면이었습니다. DJP 연합이 없었으면 정권교체도 없었을 테니까요.

김대중의 ‘아서원 연설’을 아시나요

DJ의 YS 지지 선언은 김영삼 총재와 이철승 대표 사이에서 박빙으로 펼쳐지던 신민당 당권 경쟁에서 전자에게 결정적 승기를 안겼다. 사진은 1971년도에 치러진 신민당 임시 전당대회 모습. KTV 유튜브 채널에서 갈무리했다.

공 :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은 평생의 경쟁자였습니다. 그래서 다수의 국민들이 「김대중 전집」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어떻게 평가되었는지 몹시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흥미롭고 의미심장한 부분이 있으면 소개해주십시오.

장 : 「김대중 전집」의 몇 권, 편 페이지에 김영삼 대통령과 관련된 대목이 실려 있다고 제가 지금 당장 정확히 기억해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나는 인터뷰를 하면서 사전에 문서로 준비되었거나 또는 사후에 문자로 작성된 답변서를 받는 업무 방식을 최대한 지양하고 있다. 이는 본질적으로 독자들에 대한 기만행위일 것이기 때문이다. 독자들께서는 필자의 이러한 기본적 인식과 행동수칙을 감안하면서 인터뷰를 읽어주시기 바란다.

장 : 그래도 김영삼 대통령과 연관해서 「김대중 전집」에서 또렷이 기억나는 게 있습니다. 노태우의 민주정의당,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3당 합당을 기습적으로 강행해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이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의견이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YS)와 나는 굳이 직접 만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사이다”라는 취지로 김영삼 대통령에 대해 논평했습니다.

공 : “척보면 안다”는 뜻이었네요?

장 : 예. 김대중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의 생각과 행동을 자기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훤하게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장신기 박사의 설명을 접한 필자는 한국 최고의 김영삼 전문가는 김대중이고, 한국 최고의 김대중 전공자는 김영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물론, 두 사람은 서로를 시종일관 객관적이고 공정하게만 관찰하기에는 너무나 뜨겁고 가까운 사이였을 터이다.

장 : 김대중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에 관해 한 얘기들 가운데 제일 유명한 일화가 1979년 5월에 개최된 신민당 총재 선출 전당대회를 며칠 앞두고 아서원에서 진행한 김영삼 지지 연설입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김옥선 파동으로 말미암아 신민당 총재직에서 물러난 다음 권토중래를 도모하던 중이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철승 대표 최고위원의 당권파가 박정희 정권과의 투쟁에 소극적인 경향을 드러내자 김영삼 대통령을 신민당 총재로 밀기로 결심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철승 대표가 표방한 ‘중도통합론’이 박정희 정권과의 평화공존을 꾀하는 것이라고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철승 체제의 중도통합 노선은 유신체제 아래에서 정권에 의해 존재를 안전하게 보장받는 어용 야당 노릇을 하겠다는 일종의 투항 선언이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유신 독재와의 타협을 단호히 거부하며 이기택 의원, 김재광 의원 등 야당의 여러 내로라하는 중진 정치인들에게 김영삼 대통령을 신민당 총재로 뽑아줄 것을 간곡히 호소했습니다.

그 백미가 중식집인 아서원에서의 연설이었습니다. 이 연설은 박정희 정권의 잔인무도한 철권통치에 신음하던 야당의 당원들과 지지자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안겨주는 메시지로 충만한 힘찬 사자후와도 같았습니다. 총재선출 권한을 쥔 신민당 대의원들의 표심은 김대중 대통령의 아서원 연설을 분기점으로 해서 김영삼 총재 지지 방향으로 확연히 돌아섰습니다.

양김이 힘을 합쳐 역사의 물줄기를 급격히 바꿔놓는 장소가 되었던 중국집 아서원은 1979년에는 을지로 입구에 위치해 있었다. 현재의 롯데호텔 자리이다. (④편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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