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큰 양보가 마라톤 전투의 승리를 낳다

[뉴스케이프 공희준 기자]

아테네 중장보병의 마라톤 전투에서의 승리가 없었다면 안철수가 마라톤 완주에 도전하는 일도 없었으리라. 이미지는 최근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달리기를 주제로 낸 책의 표지.

이 무렵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 왕은 그리스 정복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다티스가 이끄는 페르시아 육군은 마라톤에 진영을 설치하고는 인근 지역을 노략질했고, 아테네는 10명의 장군을 임명해 반격에 나섰다. 아테네를 구성하는 10개의 씨족마다 장군을 각각 1인씩 뽑아서 전장에 내보내는 전통을 이 엄중한 비상시국에마저 교조적으로 경직되게 따른 결과였다.

문제는 이 10명의 장군들이 동등한 지위와 권한을 갖고서 하루씩 교대해가며 지휘권을 행사한다는 점이었다. 아테네 장수들 가운데 단연 탁월한 능력자였던 밀티아데스는 이러한 규정으로 말미암아 열흘 중에서 단 하루 동안만 군을 통솔할 수 있었다.

아리스테이데스는 정치가로서의 명성과 영향력에서는 밀티아데스 못지않았다, 허나 군사적 역량은 두 번째로 꼽혔다. 아리스테이데스는 자신이 군을 지휘하도록 예정된 날의 작전권을 밀티아데스에게 자발적으로 양보했고, 다른 장수들도 곧 그의 선례를 좇음으로써 아테네는 최고의 지휘관 아래서 언제나 전투를 치를 수 있는 태세를 갖추게 되었다. 아리스테이데스는 유능하고 지혜로운 사람에게 자유의지로 복종하는 일이 전혀 부끄러운 행동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테미스토클레스와 아리스테이데스는 평소의 경쟁의식을 접고 아테네군 중앙부대의 최선두에 나란히 서서 용감히 싸웠다. 마라톤 전투는 아테네 측의 대승으로 끝났고, 페르시아의 패잔병들은 해안가에 정박해두었던 배를 타고서 황급히 도망쳤다. 페르시아인들이 허겁지겁 탑승한 선단은 그들의 의도와 달리 아시아 방향이 아닌 앗티케 쪽으로 떠내려갔다. 노련한 선원들의 상당수가 육지에서 목숨을 잃은 탓이었다.

뜻밖의 사태에 당황한 것은 페르시아인들만이 아니었다. 페르시아 패잔병들이 이판사판으로 쳐들어오게 되면 아테네 시 자체가 위험해질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승전의 기쁨에 취할 사이도 없이 아테네군은 서둘러 아테네로 돌아갔고, 마라톤에는 아리스테이데스와 그가 속한 씨족집단 출신의 병사들이 포로들을 감시하고, 전사자들을 매장하며, 전리품을 수습할 책임을 지고서 남게 되었다.

귀중한 금은을 탐낸 일부 병사들이 수북이 쌓인 재물을 몰래 슬쩍하기는 했지만 아리스테이데스가 눈을 번득이고 있는 상황에서 대규모 약탈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테네인들은 ‘정의로운 아리스테이데스’라는 칭호를 선사하며 자나 깨나 선공후사하는 그의 공명정대함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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