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의 강남좌파 아리스테이데스 (9)

[뉴스케이프 공희준 기자] 아테네가 자중지란의 위기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오는 동안 페르시아군 총사령관 마르도니오스는 멍하니 손가락만 빨고 있지 않았다. 그는 기병대를 파견해 다른 그리스군 부대와 달리 홀로 평야에 주둔하고 있던 3천 명의 메가라인들을 신나게 두들겨댔다. 메가라인들은 산기슭에 진을 친 동맹군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탁 트인 벌판에서는 중무장한 스파르타 보병대 또한 메가라군과 매한가지로 기병대의 손쉬운 사냥감이 될 것이 뻔했으므로 파우사니아스는 출격을 주저했다.

페르시아는 무질서하게 싸운 탓에 조직적으로 응전한 그리스에게 지고 만다. (이미지는 ‘삼국지게임’의 한 장면)

다들 이 곤란한 작전에 나서겠다고 누군가 먼저 자청해주길 바랐다. 호로관 앞을 막아선 여포의 기세에 짓눌려 서로 눈치만 보던 후한 말기의 반동탁 연합군 진영의 분위기와 영락없이 빼닮은 풍경이었다. 여포의 목을 베겠다고 손을 든 인물은 유력 제후는커녕 아직 이름 없는 졸병에 불과했던 장비였다.

반면에, 페르시아 기병대 제압에 총대를 멘 것은 당대 제일의 명사였던 아리스테이데스였다. 그는 3백 명의 용사들을 이끌고 들판으로 나아갔다. 보병이 너른 개활지에서 기병과 맞서는 일은 화염병 하나만 달랑 들고서 육중한 탱크를 향해 육탄돌격을 감행하는 일만큼이나 무모한 짓이었다.

조직적 전투를 펼쳤다면 승리는 당연히 페르시아의 몫이었다. 페르시아의 기병대장 마시스티오스는 이기는 전투보다는 멋있는 전투를 원했던 듯싶다. 그는 일대일 대결을 벌이는 중세의 기사처럼 선두에 서서 적의 보병대를 쓰러뜨렸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보병은 일기토에 열중하는 무질서한 기병보다 종국에는 강했다. 화살에 맞은 마시스티오스의 말이 크게 몸부림치며 기수를 땅바닥으로 떨어뜨렸고, 지면에 부딪칠 때의 충격으로 말미암아 기수는 의식을 잃었다.

그리스 병사들은 적의 대장의 몸통을 겨누고서는 무기란 무기는 다 써봤지만 황금과 청동과 무쇠를 섞어 만들어진 전신 갑옷은 쉬 뚫리지 않았다. 마침내 투창 하나가 투구에 난 눈구멍으로 그의 뒤통수까지 깊숙이 박혔고, 대장이 무참하게 살해당하는 참담한 모습을 목격한 페르시아 기병들은 사령관의 시신을 되찾는 것을 포기한 채 말머리를 돌려 일제히 도주했다.

이 잠깐의 교전에서 전사자는 많이 나오지 않았다. 관건은 양군의 사기에 미친 심리적 영향이었다. 전투에서의 기적적 승리를 연출한 그리스인들은 전쟁에서의 완전한 승리를 예감했고, 서열은 물론 권위와 용기에서도 총사령관 마르도니오스에 이어 2인자였던 기병대장을 잃은 페르시아군의 진지는 비탄과 곡소리로 꽉 찼다. 페르시아 사람들은 전사한 마시스티오스를 기리는 의미로 자신들의 머리카락에 더해 말과 노새의 털까지 깡그리 밀어버렸다.

☞ 일기토(一騎打) : 말을 탄 무사가 일대일로 싸우는 것을 뜻하는 일본어식 표현 (위키백과사전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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