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로스쿨 시스템은 총체적으로 부실하고 불공정해

[뉴스케이프 공희준 기자] 로스쿨과 사법시험의 '투 트랙(Two-Track)'이 정답

한웅 위원장은 한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 변호사가 된 건 사법고시 덕분이었다고 단언했다. (사진 김한주 기자)

한웅 : 로스쿨은 그럼에도 이미 도입된 제도입니다. 기왕에 만들어진 것을 없앤다면 엄청난 국가적 자원낭비와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수 있습니다.

낙장불입일까? 한웅 위원장은 필자의 기대 섞인 예상과 달리 전국의 모든 법학전문대학원들을 당장 폐교시켜야 한다는 과격하고 급진적인, 그러나 사이다처럼 속 시원한 쾌도난마식 해법을 내놓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않았다.

저는 법학교육의 올바른 정상화와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법률 서비스 수준의 획기적 향상을 위해 다음의 두 가지 방안을 상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로 로스쿨이 설치된 대학교들의 법대를 부활시키는 방향으로 현행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를 정비‧보완해야 합니다. 그래야 유기적이고 심도 있는 법학 교육이 이뤄질 수가 있습니다.

두 번째로 사법시험을 부활시키는 것입니다. 법조인이 되기 위한 경로로 사법시험과 로스쿨 두 가지를 병행시키자는 뜻입니다.

사법시험은 만민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공정하고 보편적인 제도였습니다. 응시하는 데 연령 제한도 없고, 학력의 차별도 없었습니다.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평가한다면 대단히 합리적이고 투명한, 유연하고 개방적인 제도였습니다.

사법시험은 한국에만 존재하는 제도가 아니었습니다. 독일 같은 나라에서도 오랫동안 시행해온 유서 깊은 전통의 제도입니다. 독일이 한국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시험의 합격자 인원이 많기 때문에 사회에서 변호사 숫자 또한 많다는 데 있습니다. 독일의 사법시험은 우리나라와의 그것과는 다르게 난이도가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로스쿨을 폐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기존의 로스쿨들을 존치시키되 법학과와 사법고시를 복원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로스쿨은 없지만 법학과는 있는 곳과, 로스쿨도 있으면서 법대도 있는 곳이 다양성 있게 공존하게 됩니다. 로스쿨을 거친 변호사들과 사법고시를 통과한 변호사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선의의 경쟁을 벌이게 됩니다. 이론과 실무를 고루 겸비한 법조인들을 키울 수 있는 제도적 토대가 비로소 탄탄하게 구축될 수가 있습니다.

사법시험이 부활되면 거액의 학비를 들여가며 굳이 로스쿨을 다니지 않아도 법조인이 될 수 있는 통로가 다시금 열리게 됩니다. 장교로 임관되는 진로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은 사관학교가 있습니다. 사관학교, 특히 육사 출신 장교들의 독점적 패권주의를 견제하기 위해 나중에 육군 3사관학교를 개교했습니다. 더욱이 학군장교(ROTC)도 있고, 학사장교도 있습니다. 장교가 되는 길이 다양한 것처럼 법조인이 되는 길 역시 다원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분야가 균형 있게 발전하려면 해당 분야에서 활동하는 구성원들의 출신 성분의 다양성이 반드시 보장‧선행되어야 합니다.

사법시험은 어려운 시험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힘든 시험을 부활시켜 단 100명이라도 다시 뽑자는 게 저의 소신입니다. 사법시험 부활로 로스쿨의 값어치와 경쟁력이 떨어질 게 우려된다면 로스쿨 정원을 되살아난 사법시험의 정원과 연동해 축소조정하면 될 일입니다. 

한국사회에서 다양성을 강화한다는 건 난이도를 높이는 것으로 줄곧 오해돼왔다. 한웅 대안정치 서울시당 준비위원장은 다양성과 난이도를 구별하는 섬세한 안목이 긴요함을 은연중 역설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사법시험을 통과한 소수의 고졸 출신 변호사들은 법조계의 다양성은 강화하면서 변별력 즉 실력은 유지시키는 빛과 소금 같은 존재들이었다.

자유한국당도 로스툴 도입에 책임 커

한웅 위원장은 로스쿨에 찬성한 자유한국당이 사시 부활을 외치는 건 코미디라고 말했다. (사진 김한주 기자)

사법시험은 넉넉하지 못한 집안 사정으로 인해 이른바 명문대학에 입학하지 못했거나, 상급 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흙 속의 진주들을 발굴하는 제도였습니다. 흙 속의 진주들의 실력은 정말 남다르고 탁월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은 어떤가요? 사법시험 합격자들과 견주면 법학적 기초가 부족한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만 연달아 배출되고 있습니다. 로스쿨 출신 법조인들 중에서 빼어난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 물론 있기는 합니다. 문제는 그런 인재들이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법시험으로 선발한 예전의 판사나 검사들에 비해 현저하게 실력이 떨어집니다.

필자는 한웅 위원장의 말을 듣고 “현저(顯著)하게“라는 표현을 인터뷰에 원문 그대로 실어도 되겠느냐고 반복해 확인해 물었다. 한웅 위원장은 그 표현을 살려도 된다고, 아니 살려야 한다고 대답했다. 익힌 듣던 바대로 한웅의 결기와 배짱만큼은 알아줘야만 했다.

로스쿨 출신들은 법학에 대한 기본 개념이 미흡한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로스쿨에서 학생들이 제출한 답안지를 채점하며 살펴보면 100명 중에서 한두 명은 천재입니다. 확실히 천재에요. 사시를 쳤어도 당연히 붙을 인물들입니다. 하지만 50퍼센트가 넘는 사람들은 엉뚱한 답안을 작성해 제출합니다. 법학에 대한 이해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탓입니다.

로스쿨은 법학 이론이 아닌 소송 실무를 강조합니다. 실무 능력도 실무 능력 나름입니다. 건축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론적 토대가 충실하고 견고해야 우수하고 안전하며 훌륭한 건축물이 탄생하는 법입니다. 이론적 기초가 허약한 상태에서 기술만 있다고 자랑하는 건축가가 설계하고 시공한 아파트와 빌딩에 누가 입주하려고 하겠습니까? 심지어 초가집조차 눈대중만으로 지을 수 없는 노릇입니다. 고유의 기본적 건축 이론이 축적되어야 합니다. 현존하는 한국식 법학전문대학원은 총체적으로 문제가 많고 부실한 시스템입니다.

문재인 정부 인사들은 자신들이 참여정부를 계승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로스쿨은 참여정부 시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전해철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어 도입을 관철시킨 시스템입니다. 문재인 정부로서는 로스쿨 폐지를 추진하고 싶어도 추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마는 결과가 되는 셈입니다.

그럼 자유한국당은 어떻습니까? 로스쿨의 폐해와 부작용을 근본적으로 교정하고 그 불합리한 모순과 맹점들을 원천적으로 개선할 의지가 그들에게는 없어 보입니다. 그저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는 데 유용하게 써먹을 정치공세의 도구로만 로스쿨 문제를 정략적으로 요긴하게 활용해왔을 따름입니다.

로스쿨은 진지한 고민 없이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나라의 사법제도기 심각한 파행을 맞이했습니다. 국가 최고인재의 선발시스템이 속절없이 망가졌습니다. 이 문제투성이 로스쿨 제도를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진정으로 치열하게 막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또한 로스쿨 제도가 당장 표가 된다고 계산해 사실상 눈감아줬습니다.

국민의 권익과 나라의 미래를 진심으로 위해주고 걱정하는 정치인이라면 어떤 특정한 제도에 수반될 수 있는 악영향과 후폭풍이 무엇일지를 사전에 신중하게 고려하고 주의 깊게 검토해봐야 합니다. 로스쿨 시스템을 채택할 때의 여당이자 지금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당시의 제1야당이자 현재도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도 이런 검토와 고려의 노력이 절대적으로 모자랐습니다.

문재인 정부, 로스쿨 문제에 시종일관 무책임했다

한웅 위원장은 로스쿨로 드러난 문재인 정권의 무책임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사진 김한주 기자)

사법시험은 1차 시험을 붙으면 그 후 2년간 2차 시험 응시 자격이 부여됩니다. 사법시험은 1차와 2차 모두 2017년에 제59회를 마지막으로 종료됐습니다. 작년인 2018년부터는 1차도, 2차도 전부 폐지됐습니다. 사법고시 전에는 고등고시 행정과와 나란히 실시된 고등고시 사법과를 통해 법조인이 충원됐습니다.

필자는 시험, 특히 필기시험 형태의 시험에는 울렁증과 벌떡증이 있다. 평생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아온 국가 주관의 주요한 시험제도의 연혁과 골간을 한웅 위원장으로부터 귀동냥을 한 덕분에 대략적이나마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고시는 공무원을, 곧 공직자를 선발하는 시험입니다. 고등고시 사법과는 일단 시험에 붙기만 하면 무조건 판사와 검사로 임용되는 시험이었습니다. 당연히 행정과는 행정공무원을 뽑는 제도였습니다.

사법시험은 그야말로 시험일 뿐입니다. 여기에 합격하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합니다. 합격자 전원이 판검사가 되는 건 아니었던 까닭에 ‘고시’ 대신에 ‘시험’이라는 명칭이 이 시험에 붙었습니다. 고등고시 행정과는 행정고시로 이름이 변경됐고요. 붙으면 자동으로 공무원이 되는 건 변함이 없었습니다. 반면에 세무사와 공인중개사는 단지 시험입니다. 변호사처럼 자격증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법시험이 사법고시로 오랫동안 혼용돼 불렸던 이유는 예전의 습관과 기억이 남은 데 있었습니다.

사법시험을 폐지하고 로스쿨 제도를 실시한 이후에 빚어져온 혼돈과 난맥상은 충분히 예견 가능한 상황 전개였습니다. 게다가 고시 낭인을 없애겠다는 애초의 약속은 공염불이 되었습니다. 그 대가로 법학 교육의 황폐화만 초래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이 더욱더 분노하는 일은 로스쿨 때문에 봉건적인 음서제가 슬그머니 되살아난 사태에 대해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는 인물이 여태껏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책임지기는커녕 제대로 사과하는 사람마저 없습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합니다. 저는 로스쿨 제도를 둘러싸고 드러난 문재인 정부의 무책임과 더불어민주당의 모르쇠가 나머지 사안들에서도 고스란히 되풀이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여당이 다른 제도를 도입했는데 이로 말미암아 국민들이 커다란 고통과 불편을 겪는다고 하여도 청와대든, 더불어민주당이든 반성도 않고, 사과도 않으며, 책임도 지지 않을 게 분명합니다.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건 엄밀히 따진다면 관료들의 책무이다. 정치인들, 특히 정치 지도자는 수립하고 집행된 정책에 관해 책임을 지는 게 본연의 사명이자 역할이다. 박근혜 정권에서도, 문재인 정권에서도 청와대와 집권 여당의 실세 정치인들이 볼썽사납고 듣기 민망한 유체이탈 화법을 수시로 구사하는 건 그들에게 근본적으로 책임윤리가 결여된 탓일 게다.

로스쿨에서 드러난 즉흥성과 맹목성, 발뺌과 무책임은 이후에도 수많은 국가 정책들이 파탄에 가까운 실패를 거듭할 것임을 예고합니다. 문재인 정부와 자유한국당은 자기네가 밀어붙이고 묵인한 로스쿨의 문제점들을 지금이라도 국민들에게 솔직히 시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로스쿨이 노출한 한계들을 언제,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명징하고 구체적인 일정과 대안을 제시해야만 합니다. 누가 법학전문대학원의 도입을 진짜로 주도했는지 그와 관계된 책임자들을 정확히 공개하는 일이 요구되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겠고요. 그게 한 국가의 살림과 운명을 떠맡은 국정 운영자로서의 최소한의 책임 있는 자세입니다.

허나 현실은 이와 같은 바람직한 자세를 정부여당의 그 누구도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그러한 까닭에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 성적표에 현재까지는 낙제점을 매기고 싶습니다.

공희준 : 어려운 주제 초보자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웅 : 재미있게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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