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대군과 그리스 연합군의 숨바꼭질

[뉴스케이프 공희준 기자]

페르시아와 그리스 병사들은 전투에서의 유리한 고지를 완전정복하기 위해 장군들로부터 “이 산이 아닌가벼?”를 몇 번씩이나 들어야만 했다. 이미지는 훗날 나폴레옹이 알프스 산맥을 넘는 장면을 미화해 묘사한 그림.전투는 소강상태에 빠졌다. 신탁을 해석하는 예언자들이 공격을 당하는 군대가 도리어 승리를 거머쥘 것이라고 이야기해온 탓이었다. 진실은 양측 모두 아군을 지킬 힘은 있어도, 적군을 부술 힘은 없다는 데 있었다.

다급한 쪽은 페르시아였다. 그리스군은 증원군이 속속 합류하며 나날이 군세가 불어났으나, 이와 달리 페르시아는 규모는 그대로인 채 식량만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굶어죽으나 싸우다 죽으나 어차피 죽는 것은 똑같다고 판단한 마르도니오스는 날이 밝자마자 전군을 동원해 아테네 진영을 급습할 계획을 세웠다.

자정이 되었을 무렵, 자신을 마케도니아에서 온 알렉산드로스라고 소개한 한 사나이가 남몰래 아리스테이데스를 찾아와 군량이 바닥난 페르시아군이 이판사판으로 기습에 나설 것임을 알렸다. 그는 이 사실을 아리스테이데스 혼자서만 간직할 것을 부탁하고는 찾아올 때만큼이나 티 나지 않게 사라졌다. 아리스테이데스는 다음날 아침에 적군이 총공격해올 것임을 그리스 연합군의 총수인 파우사니아스에게만 귀띔했고, 두 지휘관은 자세한 이유는 밝히지 않은 채 휘하의 장수와 병사들에게 즉시 전투준비를 하도록 지시했다.

파우사니아스는 추가로 명령을 내렸다. 아테네군을 그리스 연합군의 우익으로 재배치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좌익으로 이동한 스파르타군은 페르시아에게 부역하는 그리스인 용병들과 교전할 것이라는 설명을 보탰다.

아리스테이데스의 부하들은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노예처럼 취급하면서 이번 전투에서 가장 위험한 자리로 몰아넣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아리스테이데스는 스파르타인들이 통상적으로 최정예부대가 포진해온 우익을 자발적으로 양보해준 것이야말로 얼마나 기쁜 일이냐면서 이는 아테네가 명실상부하게 그리스 세계의 우두머리가 되었음을 시사하는 징표라고 장병들을 달랬다. 그는 비록 조국을 배반했다고는 하나 같은 동포인 그리스인과 싸우지 않게 된 사실도 다행이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설득이 주효해 아테네인들은 배정된 위치로 옮겨갔다. 그들은 조용히 움직이지 않았다. 마라톤 전투 이래로 아테네 군대가 얼마나 강력해졌는지를 동료들에게 일깨워주면서 지금의 아테네가 밀티아데스 시절의 아테네와 견주어 못할 것도, 모자랄 것도 없다고 서로를 부지런히 격려했다.

그리스군 진영의 부산한 위치 변경은 헛수고로 판명되었다. 테베인들로부터 그리스군의 동태에 관련된 첩보를 전해들은 페르시아군도 적의 대형변화에 발맞춰 부대의 위치를 신속히 바꿨기 때문이다.

축구 경기나 농구 시합에서의 맨투맨 방어와 비슷한 시끌벅적한 상대 따라가기가 한 차례 더 진행된 결과 양군은 페르시아군이 스파르타군과 맞서고, 아테네군이 그리스의 배신자들과 마주하는 원래의 형세로 도로 돌아가고 말았다. 파우사니아스는 더 이상의 무익한 숨바꼭질을 단념하고는 적의 기병대에 의해 아직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식수원이 있는 장소로 전 병력을 이동시켰다.

“이 산이 아닌가벼?” 식의 헛걸음이 되풀이되자 아테네 병사들의 인내심은 한계를 넘어섰다. 그들은 대오를 유지하라는 지휘부의 명령에는 아랑곳없이 무질서하게 이동해 아무렇게나 천막을 치고 야영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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