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을 생각한다 ③

[뉴스케이프 공희준 기자] 이해찬은 왜 소외됐을까

피천득의 대표적 수필인 「인연」은 똑같은 인연도 어떤 때는 아름다운 추억이, 다른 어떤 때는 기억하기조차 싫은 악몽이 됨을 일깨워주고 있다. 이해찬과 유시민은 어떤 인연일까?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이하 ‘이해찬’으로 호칭)는 김대중 정부의 초대 교육부 장관으로 재임하면서 철밥통 교원들의 정년을 과감하게 단축시킴으로써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를 신속하게 극복하려면 반드시 완수해내야만 했던 절체절명의 과제인 공공부문 개혁에 필요한 결정적 돌파구를 마련하였다.

개혁은 본질적으로 남의 눈에서 눈물 나게 하는 일이다. 내 손에 피 묻히는 행동이다. 호봉은 올라가되 역량은 올라가지 않는 한국의 교직사회가 장기간 만끽해온 과도한 특권을 타파하는 책무는 누군가 반드시 메야만 하는 고난의 십자가였다. 이해찬은 그 고난의 십자가를 본인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결과적으로 짊어졌다.

문제는 그동안 누려온 풍성한 처우와 기름진 혜택을 졸지에 빼앗기고서 이를 부득부득 갈았을 조기퇴직 교원들과 그 가족들 또한 우리나라 현행 헌법체계 아래에서는 엄연한 유권자라는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공공부문 개혁의 영웅 이해찬을 김대중 정부도, 당시의 집권여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도 더 이상 정치의 전면에 내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해찬이 여권 내에서 알게 모르게 은근히 소외당하며 시나브로 뒷줄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다. 게다가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도 한다. 이때 이해찬이 공공부문 개혁의 전도사를 아예 드러내놓고 자처하며 철밥통 공무원들과의 전쟁을 진취적으로 선포하고 나섰다면 2002년 대선정국을 강타한 태풍의 이름은 ‘노풍’이 아닌 ‘해풍’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잘못된 선택이 부른 잘못된 인연

이해찬은 유능한 선거기획자의 한계를 뛰어넘어 유력한 대중정치인으로 변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몇몇 호사가들은 이해찬의 외모나 말투가 대중정치인으로 크게 성공하기에는 부적합하다고 평가하기 일쑤다. 그렇지만 필자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어눌한 말투와 시원찮은 얼굴로 비록 인기는 끌지 못할지언정 그 대신 지지는 충분히 모아낼 수 있다. 연예인이 인기를 먹고사는 존재라면, 정치인은 지지가 식량인 인간이다. 이해찬의 생김새와 꾸밈새로는 폭넓은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주장은 고졸 출신 대권주자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만큼이나 터무니없는 편견이고 선입관일 뿐이다.

새로운 시대를 만드는 위대한 영웅은 오래된 편견과 싸우고 뿌리 깊은 선입견을 깨부수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법이다. 이해찬이 주어진 현실에 타성적으로 안주하지 않고, 자신을 둘러싼 편견과 싸우고 선입관을 깨부수는 도전과 모험에 담대하게 착수했다면 그는 책사 이상의, 참모 이상의, 기획자 이상의 그 무엇이 될 수도 있었다. 한마디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이해찬은 민중과 함께하는 양지의 리더로 거듭나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그는 출세한 권세가들을 주로 상대하는 무대 뒤편의 실세로 남는 행보를 걸었다. 지도자가 아닌 권력자를 지향하기로 결심한 이해찬의 진로 선택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마당을 깔아준 인물은 다름 아닌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다.

두 사람 모두의 인생에 중차대한 변곡점을 찍었다는 맥락에서 이해찬과 유시민은 세 번 만났다. 첫 번째는 서울대 운동권 선후배 관계로 만났다. 두 번째는 현역 국회의원과 그의 비서진 신분으로서 만났다. 세 번째는 “국민의 정부의 끈 떨어진 전직 장관 이해찬 대 참여정부의 떠오르는 황태자”의 입장으로 만났다.

수필가 피천득은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바 있는 「인연」이라는 제목의 유명한 수필에서 자신과 한 일본인 여성 아사코(朝子)는 세 번을 만났다고 술회하며 세 번째 만남은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라는 회한과 씁쓸함의 심정을 내비쳤다.

이해찬과 유시민도 피천득과 아사코처럼 처음 두 번만 만난 다음 마지막 세 번째는 차라리 아니 만나는 게 훨씬 더 나았을 것이다. 그들의 세 번째 만남은 남한사회의 힘없고 가난한 수많은 인민대중에게 두고두고 커다란 고통과 시련을 안겨주는 처절한 비극의 씨앗이 되었기 때문이다. (계속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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