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것은 현장에서 승부하려는 끈기와 성실함

[뉴스케이프 공희준 기자] 공희준(이하 공) :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장관직에서 사퇴했습니다. 조 전 장관의 부인인 정경심 동양대학교 교수는 구속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나뉜 민심의 분열과 갈등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검찰개혁은 대단히 중요한 국가적 과제입니다. 검찰이 바로 서지 않으면 나라가 바로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검찰은 바로 서기보다는 늘 현재의 살아 있는 권력 편에 서기 일쑤였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검찰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출범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검찰개혁’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명제를 둘러싸고 나라가 오히려 갈려 있는 상황입니다. 야당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것이 검찰개혁이 아닌 검찰장악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기도 합니다. 변호사님께서는 국민 모두가 동의하고, 야당도 승복할 수 있는 검찰개혁의 방안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검찰조직이 정권을 위한 검찰도 아니고, 검찰을 위한 검찰도 아닌, 명실상부한 국민을 위한 검찰로 거듭나려면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사들의 인식과 태도가 어떠한 방향으로 바뀌어야만 하다고 보십니까?

마징가Z와 쇠돌이도 평소에는 각자 떨어져 있어

민병덕 변호사는 검찰이 수사권, 기소권, 가석방 결정권을 모두 쥔 나라는 한국을 빼고는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민병덕(이하 민) : 검찰이 가진 권력은 나눠져야만 합니다. 그리고 견제를 받아야 합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보름밖에 되지 않은 2003년 3월 9일,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전국 평검사들의 대화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사법연수원생 1년차 신분으로 있으면서 현직 대통령과 일선 검사들이 직접 토론하는 초유의 광경을 텔레비전 생중계로 지켜보았습니다.

민병덕 변호사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제34기로 수료한 바 있다.

그때 평검사로 근무하던 분들이 한 이야기가 아직까지도 제 기억에 선연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검사들이 이렇게 날밤을 지새우며 고생을 하는데 왜 자신들을 견제하려고 하느냐고 푸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현직 검사들의 그와 같은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분들이 헌법공부를 한 것이 너무 오래되지 않았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면 사법시험을 통과해 검사로 임용된 사람들이 삼권분립의 개념에 대한 이해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검찰 권력을 비롯한 모든 권력은 당연히 견제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자명한 원리를 검사들은, 검찰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견제 받기를 싫어했습니다.

검찰은 마징가Z를 연상시킬 만큼의 무시무시한 괴력을 갖고 있습니다. 마징가Z는 헬 박사가 만들어낸 기계수들이 나타날 때면 어김없이 수영장 물을 가르고서 출동하곤 합니다. 그런데 마징가Z가 인파와 자동차로 복잡하게 북적이는 도심 지역을 시도 때도 없이 마구 헤집고 다닌다고 가정해보세요. 그럼 헬 박사가 아니라 마징가Z 등살에 못살겠다는 시민들의 원성이 자자해질 게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쇠돌이와 마징가Z는 평상시에는 서로 따로따로 분리해 있기 마련이었습니다.

민병덕 변호사의 견해를 듣고 보니 아수라 남작(사후에 백작으로 추증)이 괴물이 된 까닭은 하나의 몸에 남녀가 같이 붙어 있는 탓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반대로, 아수라 백작과는 견원지간의 관계였던 브로켄 백작은 머리와 몸통이 따로 논 터라 괴물로 취급받았다.

이제는 검사들도 민주주의가 뭔지를 알아야

민병덕 번호사는 대한민국의 검사들이 민주주의 기초인 권력분립에 대한 이해도가 크게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수사권을 갖고 있습니다. 수사를 하는 사람도 힘들겠지만, 수사를 받는 사람 역시 힘들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오르는 순간 그 즉시 오금이 저려오는 법입니다.

검찰에게는 수사권과 함께 기소권이 있습니다. 기소권은 누군가를 수사의 내용에 기초해 기소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게다가 검찰은 그 막강한 기소권을 홀로 독점하고 있기조차 합니다. 독점을 하고 있으니 검찰이 기소와 관련된 재량권을 발휘할 여지가 막대합니다. 기소 독점과 기소 재량을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하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유로 수사한 결과를 재판에 넘길지 말지를 검사 혼자서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기소 독점은 “나 혼자서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기소 재량은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기소는 재판에 부치는 절차입니다. 우리나라 검찰은 다른 사람을 재판에 회부할 수 있는 이 엄청난 권력을 자기 혼자서 자기 마음대로 휘둘러왔습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제시된 방법이 검경 수사권 조정입니다. 수사는 경찰이 진행하고, 공소유지는 검찰이 맡자는 취지입니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유달리 우리나라에서만 분리돼 있지 않은 데 대한 문제의식의 발로입니다.

검찰의 권한은 비단 기소 독점과 기소 재량에만 마물지 않습니다. 재판 종료 후에 행사할 수 있는 집행권도 기소 독점과 기소 재량에 못잖은 강대한 권력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복역 중인 죄수를 가석방을 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권한을 검사가 다 갖습니다. 수사권, 기소권, 집행권 모두 무소불위의 권력입니다. 검사가 세 가지 가공할 권력 전부를 장악한 국가는 한국을 빼고는 전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검사들이 막강한 권력을 보유하고 행사하기 시작한 시점은 6‧25 전쟁 이후의 비상시국에서부터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시상황이나 그에 준하는 비상사태가 더 이상 아닙니다. 검찰에게 집중적으로 부여된 권력을 응당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견제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굳이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검찰 권력에 대한 견제의 관건은 민주적 통제의 원칙에 있습니다. 최근에 사회적 의제로 부각된 법무부의 문민화는 검찰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일환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원칙을 보다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관철시키자는 것입니다. 저는 이를 위해 지방검찰청의 검사장을 국민들이 직접 선출하는 방안을 과감하게 전향적으로 고려했으면 합니다.

법치국가의 모범으로 손꼽히는 미국 같은 경우에는 지방검사장은 물론이고 경찰서장도 시민들이 직선으로 뽑아왔습니다. 검사장과 경찰청장을 주민 직선으로 뽑는 일이야말로 지방자치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검사장을 주민들의 직선으로 선출하면 검사들이 더는 검찰총장 등의 윗선의 눈치를 보지 않고 법률과 양심에 입각해 소신껏 본연의 업무에 임할 수가 있습니다. 상사의 심기를 살피지 않는 대신에 검사들이 이제부터는 국민들에게 충성하게 됩니다.

저는 검찰개혁의 제도적 방향은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원칙을 강화하고, 관철시키는 데 그 초점이 맞춰져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현재 검찰이 갖고 있는 수사권, 기소권, 그리고 집행권의 3대 권력 또한 자연스럽게 나눠질 수가 있습니다.

저는 검사들이 격무에 시달려온 현실을 기꺼이 인정합니다. 그러나 격무에 시달린다는 점이 정당한 민주적 통제를 회피하고 거부하는 구실로 악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권력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욱더 엄격한 견제를 받아야 합니다. 검찰에 대한 견제는 검사들 스스로를 위해서도 매우 바람직한 일입니다. 검찰에 대한 견제가 원활하게 이뤄져야 검사들이 특정 정권의 시녀가 아닌 국민의 공복으로서의 역할과 소임에 충실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권력을 가지면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는 민주주의 시스템의 기본적인 철학과 생리를 한국의 검사들이 하루빨리 학습하고 체득하면 좋겠습니다.

나는 꽃가마 타는 대신에 바닥을 닦았다

민병덕 변호사는 1970년생이다. 우리나라 정치에서는 아직은 젊은 나이다. 그는 비례대표나 전략공천 등의 편하고 안전한 경로 대신에 지역에서 착실히 바닥을 다지는 힘들지만 보람된 길을 가겠다는 당찬 포부를 피력했다.

민병덕 법무법인 민본 대표변호사가 검찰개혁에 관한 논의를 펼칠 때 필자는 중간에 일부러 끼어들지 않았다. 한 사람의 식견과 안목, 그리고 전문성은 최소 5분 이상 혼자 얘기를 해봐야 그 진가와 윤곽이 드러나는 까닭에서였다. 법과 제도에 대한 그의 전문지식을 청취해봤으니 다음은 변호사 민병덕이 아니라 정치인 민병덕의 현실적 정무감각을 검증하고 판별해볼 차례였다.

공 : 변호사님께서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약칭 민변)’의 회원으로 활동해오셨습니다. 우리나라 정치권에는 민변 출신의 정치인들이 상당한 숫자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유권자들 입장에서는 민변 소속 법조인들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면 솔직히 이제는 별다른 감동과 신선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다른 건 참아도 궁금증은 절대 못 참는 성격입니다. 그래서 원래는 인터뷰 마지막에 드리려던 질문을 시점을 약간 앞당겨 단도직입적으로 변호사님께 던져보도록 하겠습니다. 기존의 민변 출신 정치인들과 민병덕이라는 신진 정치인이 결정적으로 차별화되는 지점은 어디에 있습니까?

민 : (자세를 고쳐 앉으며) 저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민병덕 변호사입니다. 저는 민변 안에서도 민생경제위원회에 속해 있습니다. 저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을 저 자신의 준거집단으로 오랫동안 여겨왔을 만큼 민변이 굉장히 좋은 조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민변에는 훌륭한 분들이 아주 많이 계십니다. 저는 그 안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저는 변호사로 등록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민변에 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제가 민변을 너무나 좋아하고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민변은 우리 사회의 정의와 인권, 진보와 민주주의를 위해 중요하고 커다란 기여를 해왔습니다. 그러한 업적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많은 민변 출신 변호사님들이 비례대표에 영입되거나 또는 전략공천을 곧 단수공천을 받는 형식으로 정치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공 : 보통 그런 경우를 꽃가마 타고 갔다고 묘사합니다.

민 : 저는 그분들과는 달리 민심의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쳐가며 정치를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공 : 민변에도 학교나 정당에서처럼 금수저가 있고, 흙수저가 있나요? (웃음)

민병덕 변호사는 조금은 당혹스러울 수도 있는 필자의 돌발성 질문에 대해 웃음으로 답변을 갈음했다. 그의 웃음에 담긴 함의를 해석하는 작업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놓도록 하겠다.

민 : 어떤 분들은 저에게 여의도의 중앙정치무대에서 열심히 인적 네트워크를 넓혀가며 안전하게 비례대표 상위순번에 공천되거나 혹은 편안하게 전략공천을 받는 길을 노려보려고 조언하기도 했습니다. 지역구 활동이 몹시 힘들 텐데 그러한 수고로움을 굳이 겪을 필요가 있겠냐는 저에 대한 일종의 애정의 발로일 수도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공천권을 쥔 중앙당의 실력자들과 친분관계가 두텁다고 해서 꽃가마 타고 여의도에 입성할 수 있는 시대는 이제 끝났습니다. 지금은 지역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정치인은 금방 시들고 맙니다. 저는 제가 이곳 안양에 뿌리를 내리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정치에 대한 필요성을, 정치에 대한 절실함을 오히려 훨씬 더 투철하게 갖게 됐습니다. 다른 민변 출신 선배 정치인들께서 갖고 계신 장점을 저는 갖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뿌리를 내리려는 지역에서 열심히 바닥을 닦아온 성실함을 갖고 있습니다. 끈기를 갖고 있습니다. (②편에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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