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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계현② “항공사 마일리지는 어떻게 계륵이 되었나” - 여행업계의 도급구조, 건설업종 하청체계만큼이나 문제다
  • 기사등록 2019-12-11 1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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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운동은 기업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바람직할까? 지나치게 가까우면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와 같은 음습한 유착관계가 형성되고 만다. 그러면 결국에는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는다. 반대로 너무 멀어도 문제다. 소비자운동이 기업을 타도와 적대시의 대상으로만 간주한다면 최종적으로는 소비자들이 그 유탄을 맞는 탓이다.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은 소비자운동은 기업과 싸워야 할 때는 거침없이 싸우고, 협력해야 할 때는 통 크게 협력하는 유능하고 건전한 야당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소신을 피력하고 있었다. 그는 기업과 소비자운동 사이에서 공정한 중재자 역할을 자임해야만 할 정부가 여전히 기업 편향적 자세를 띠고 있는 현실을 몹시 안타까워했다.

누가 ‘한국형 레몬법’을 유린했나


고계현 총장은 업계의 압력과 정부의 무관심이 한국형 레몬법을 무력화시킬 뻔했다고 분노했다. (사진 김한주)

고계현(이하 고) : 우리나라는 기업의 편익을 중심으로 사회경제적 시스템이 구축됐습니다. 자동차는 일반 가계에서 구입하는 여러 내구소비재들 가운데 가장 가격 부담이 큰 품목입니다. 차 한 대 값으로 최소한 3천만 원은 들어가니까요. 그렇게 거액을 들여 새로 차를 장만했는데, 인수받은 지 6개월 안에 고장이 발생하는 차량들이 종종 있습니다.


요즘은 판매 후 사후관리(AS) 시스템이 정교하게 발달했습니다. 소비자들의 권리도 대폭 신장됐습니다. 품질보증기간 내에 제품에 하자가 발견되면 제조사 측에서 신품으로 즉시 교환해줍니다. 거금을 지출해 새 차를 마련했는데, 만약에 계속 똑같은 고장이 반복된다면 이는 제조과정에 분명 결함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자동차사들이 차를 아예 새로 교체해주지 않고 특정한 부품만을 바꿔주는 땜질식 미봉책만을 고집하면 차의 주인인 소비자가 그냥 포기해버리는 사례가 종종 있다는 겁니다. 그럴 경우에 새 차가 헌 차가 되는 건 순식간입니다.


다른 나라들에는 이런 사태를 상정해 ‘자동차 교환환불법’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신차를 인수한 다음 1년 안에 동일한 부위에서 동일한 고장 현상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경우, 새 차로 교환해주도록 의무화한 제도입니다. 그래서 저희 소비자주권시민회의에서는 작년에 ‘한국형 레몬법’으로 불릴 수 있는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의 입법 운동에 나섰습니다. 


레몬법의 정식 명칭은 「매그너슨-모스 보증법(Magnuson-Moss Warranty Act)」이다. 1975년 미국에서 연방법으로 제정된 이 법안은 소비자가 새로 구입한 자동차와 전자제품 등이 불량품으로 판명 났을 경우 제조사가 이를 즉각 교환‧환불해주도록 강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형 레몬법에는 중대하 하자가 있습니다. 국내외 자동차 회사들의 집요한 압력과 로비, 기업들에게만 온정적인 국토교통부의 그릇된 태도가 서로 맞물려 작용한 영향으로 한국형 레몬법은 차량 제조사들이 이 법안을 수용해야만 제도가 작동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공희준(이하 공) : 어떤 식으로 장난을 쳐놨나요?


고 : 소비자가 신차를 구매할 당시 계약서에 교환 및 환불에 관한 규정이 명문화돼 있어야만 법안이 효력을 발휘하도록 만들어놨습니다. 한마디로,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사양으로 처리해두었습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올해인 2019년 1월에 이와 관련된 전수조사를 실시해 한국형 레몬법을 무력화시킨 업체들이 어떤 회사들인지를 전부 공개적으로 발표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국토교통부에 한국형 레몬법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는 조치를 신속히 취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습니다. 그 결과 현재는 우리나라에서 차량을 판매하는 거의 모든 자동차 업체들이 한국형 레몬법을 받아들인 상태입니다.


국적 항공사들의 마일리지가 ‘계륵’이 된 까닭은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은 항공사들의 오만한 일방주의를 맹렬하게 비판했다. (사진 김한주 기자)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전력을 기울여 추진해온 또 다른 소비자 권리 증진 활동은 항공사 마일리지 제도의 개선 운동입니다. 우리나라 항공사들은 지난 2008년에 약관을 개정해 마일리지 시효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사용하지 않은 마일리지가 10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소멸되도록 장치해놨습니다. 소비자들의 동의취득 작업을 생략한 일방적 결정이었습니다.


우리나라와 비교해 외국의 항공 마일리지의 존속 기간이 짧은 것은 사실입니다. 다른 나라들은 보통 3~5년이 경과하면 적립된 마일리지가 사라집니다. 대신에 외국 항공사들은 마일리지의 ‘소진처’를 명확히 보장해줍니다.


공 : ‘소진처’라는 용어가 약간 생소합니다.


고 : 구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용도입니다. 마일리지가 헛되이 소멸되지 않도록 소비자들의 권리를 확실히 보장해준다는 의미입니다. 비행기표를 무료로 나눠주든지, 좌석의 등급을 상향조정해주든지, 관광을 갔을 때 호텔 객실의 숙박비를 할인받을 수 있게끔 배려해주든지, 렌터카를 빌릴 적에 요금을 깎아준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뭔가 분명한 편의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합니다.


공 : 소비자들이 직접 수고롭게 마일리지를 확인해 챙길 필요가 없겠네요?


고 : 예, 그렇습니다. 어떠한 형식이건 간에 항공사들이 소비자들에게 마일리지에서 파생되는 여러 유형의 혜택들을 책임감을 갖고서 부여해줍니다. 반대로 우리나라에서는 마일리지를 활용할 수 있는 경로와 방법이 극도로 제한돼왔습니다. 조금 심하게 표현하면 어디 가서 쓸 데가 별로 없습니다. 마땅한 용처조차 없는 유명무실한 계륵과 같은 마일리지에 지금은 유효기간까지 덧씌워진 형편입니다. 이는 항공 소비자들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한 일과 다름이 없습니다.


항공사 마일리지 시효 제도는 앞서 말씀드린 바대로 2008년에 도입되었습니다. 따라서 올해 1월 1일을 기점으로 도처에서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소멸 사태가 빚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항공사들의 독단적인 시효제도 도입으로 인해 마일리지를 상실한 소비자들과 함께 ‘마일리지 시효소멸 취소소송’을 벌이는 중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는 항공사의 부당한 약관 개정에 대한 시정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해왔습니다. 이에 따라 공정위에서는 소비자들의 마일리지 관련 권리를 증대할 수 있는 방안에 관해 항공사들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행업계의 도급 구조, 건설업계와 빼닮아


지난번 일어난 헝가리 유람선 침몰 참사를 계기로 저가 해외여행 상품의 실태와 문제점이 다시금 사회적 조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직 제대로 짚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해외여행도 건축공사장처럼 다단계의 도급제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해외여행 역시 원청-하청-재하청 체계로 운영돼오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막상 현지에서는 하청도 아닌 부실하고 영세한 재하청 업체들이 관광객들의 안전을 책임지곤 했습니다.


가령 여행객들은 원청 여행사에 50만 원을 지불했는데, 여행지의 재하청 여행사는 거의 돈을 받지 못했다고 가정해보세요. 안전한 여행도, 정상적 관광도 기대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워지기 마련입니다. 저희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여행업계에 만연해온 불합리하고 불건전한 하청 관행으로부터 기인하는 불공정 거래행위를 근본적으로 시정할 수 있는 심사절차의 개시를 관할 정부기관에 청구해놓은 상황입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지난 2년 3개월 동안 통신, 자동차, 항공과 여행, 그리고 식품표시제도 등의 다양한 영역들에서 저희만이 수행할 수 있는 활동을 최선을 다해 실천해왔습니다. 저희들이 열심히 일한 만큼 이에 상응하는 유의미한 성과물들도 꾸준히 창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소비자운동은 강하고 좋은 기업의 동반자


고계현 총장은 소비자운동과 기업을 적대관계로 여기는 생각은 시대착오적 사고라고 지적했다. (사진 김한주)

공 : 현재 우리나라의 민생경제가 매우 어렵습니다. 기업들은 IMF 관리체제 당시를 방불하게 할 정도의 사상 최악의 불경기라고 하소연하고 있을 지경입니다. 그러므로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소비자운동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일을 방해하고 있다는 시각을 드러내왔습니다. 총장님께서는 소비자운동이 경제의 활력을 저하시키고, 기업의 경쟁력을 훼손한다는 일각의 지적에 동의하시는지요. 만약 동의하시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고 : 문제의 본질은 기업의 경쟁력을 궁극적으로 어떻게 규정하고 확보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과거 관치경제 시대의 유물인 각종 규제들이 아직도 곳곳에 잔존해왔습니다. 수출을 하려면 수십 개의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만 했습니다. 저는 과도한 규제를 혁파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구현하자는 주장이 소비자운동과 크게 충돌할 여지는 작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소비자들의 권리 보호도, 불필요한 규제의 제거도 기본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증진하고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의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규제 개혁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건 역대 모든 정권들마다 임기 초에 표방한 목표였습니다. 규제 개혁이 지지부진한 까닭은 관료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놓지 않으려고 끈질기게 버티는 데 있습니다. 공무원들은 이제껏 불필요한 규제를 푸는 시늉만 냈을 뿐입니다. 관료사회가 틀어쥔 과도한 권한을 실제로 손에서 내려놓지는 않았습니다. 관료들의 기득권 사수 때문에 지지부진한 규제 개혁을 민간의 소비자운동 탓으로 돌리는 건 비겁하고 전형적인 책임전가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근시안적 발상일 따름입니다.


소비자들의 권리가 강화되면 기업들이 경쟁력이 진짜 약화될까요? 기업의 경쟁력은 기업들에게 시장에서 무슨 짓이든 자기 마음대로 저지를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어준다고 해서 생겨나지도, 강해지지도 않습니다. 좋은 기업은 좋은 제품을 만들어 좋은 가격에 파는 회사입니다. 이런 좋은 회사들은 자연스럽게 경쟁력이 확보되는 법입니다. 소비자들이 해당 기업의 제품을 변함없이 사용하고 사랑해줄 테니까요.


강한 기업은 시장의 확고한 신뢰와 소비자의 든든한 믿음을 받는 회사이기도 합니다. 소비자의 믿음과 시장의 신뢰를 얻은 회사가 판매한 제품은 재구매로 연결되는 확률 또한 매우 높습니다. 이와 같은 선순환 구조가 국내시장은 물론이고 해외시장에서도 정착될 때 그 기업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기업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경쟁력의 요체입니다. 이러한 회사들일수록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과시해온 건 굳이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21세기 현대경영에서 얘기하는 기준의 훌륭한 기업은 단지 이윤 창출에만 뛰어난 기업이 아닙니다. 이윤 창출도 잘하면서 이와 나란히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도 확실하게 완수하는 회사여야만 합니다.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이윤 창출과 사회적 책임 전부를 균형 있는 시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기업을 우호적이고 긍정적으로 인식합니다. 그 회사에서 나온 제품에 대한 선호도 또한 당연히 높습니다. 소비자의 신뢰를 받는 기업의 제품은 소비자들의 구매와 재구매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납니다. 소비자들의 사랑과 믿음을 얻는 길이 제일 효과적이고 안정적인 기업의 경쟁력 강화 방도라고 하겠습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소비자와 기업이 상생하고 공존하는 유연하고 합리적인 소비자운동을 추구해왔습니다. 정상적 기업 활동을 보장하고 존중하자는 게 저희 단체의 일관된 방침이었습니다.


공 : 정상적 기업 활동이란 무엇을 가리키나요?


고 : 소비자의 이유와 근거가 있는 제품교환과 환불 요구를 회피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자 있는 불량품이 초래한 소비자의 피해를 즉각적으로 구제하는 일입니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애프터서비스에 나서는 것도 정상적 기업활동의 일환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습니다. 적정한 가격의 제품을 결함 없이 만들어내는 것이 정상적 기업활동의 하나임은 물론입니다. 저희는 지금 열거된 것과 같은 정상적 기업활동이 원활하게 이뤄지는 데 필요한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고 제도적 장치를 강구하는 일에 주안점을 두어왔습니다. 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보완해주는 활동을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전개해온 셈입니다.


소비자운동은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켜주는 선의의 감시자 역할을 이행해왔습니다. 저는 소비자운동을 기업과 갈등하고 대립하는 관계로만 파악하는 기존의 낡은 사고의 틀을 이제는 깰 때가 되었다고 믿습니다. (③편에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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