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출신 정치인들, 진영논리에 빠른 속도로 물들어

[뉴스케이프 공희준 기자] 공희준(이하 공) : 시민사회단체 출신 인사들은 학생운동권 출신의 586 세대 정치인들과 더불어 문재인 정부의 양대 축을 구성해왔습니다. 단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역대 청와대 정책실장 전원이 경실련과 나란히 우리나라 시민운동진영을 이끌어온 참여연대에 몸담았던 인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주도적으로 입안‧추진했던 현 정부의 정책들에 대한 민심의 반응이 썩 좋지가 않습니다. 기사들에 달린 댓글만 봐도 작금의 시중 분위기가 보통 험악한 게 아닙니다. 더 큰 문제는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자신들은 여전히 비주류라고 주장하면서 자기네가 밀어붙인 잘못된 정책에 대해 권력에 상응하는 책임을 전혀 지지 않으려고 한다는 데 있습니다. 총장님께서는 경실련 사무총장으로 오랫동안 일하며 시민사회에서 잔뼈가 굵은 입장에 계십니다. 외부의 관찰자가 아닌 내부 관계자의 관점에서 바라보셨을 때 시민단체와 그곳에 몸을 담았던 인사들의 정치 참여가 과연 이대로 괜찮은지 냉철하게 짚어주십시오.

시민단체 인사들, 정치인으로 결말 안 좋아

고계현 사무총장은 시민단체 출신 정치인들이 진영논리에 유달리 쉽게 빠진다고 비판했다. (사진 김한주 기자)

고계현(이하 고) : 제가 왜 정치권으로 진출하지 않고 시민단체에 꿋꿋이 남아 있겠습니까? 저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약칭 경실련)에서 20년 넘게 시민운동을 펼쳤습니다. 경실련을 나온 다음에는 제가 현재 사무총장으로 일하는 소비자주권시민회의의 창설 작업에 깊숙이 관여했습니다. 따라서 시민사회운동의 활동가들과 전문가들이 현실 정치인으로 탈바꿈하는 모습들을 숱하게 목격해왔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시민단체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일을 그리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다른 모든 이유를 떠나서 시민단체에 있다가 정당으로 간 분들의 대부분이 일반적으로 그 결말이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이 정치권에 가서 아름답지 못한 결말을 맞이한 까닭을 제가 당사자들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대답이 과연 온당하고 납득할 만한 것인지 저는 꼼꼼히 따져봤습니다. 그 결과 이와 같은 평가에 이르렀습니다.

고계현 사무총장은 원래는 “뒤끝이 좋지 않았다”고 표현했다. 필자는 ‘뒤끝’을 ‘결말’로 대체했다. 그가 너무나 직설적 용어로 답변한 터라 질문한 내 쪽에서 오히려 화들짝 놀란 까닭에서였다. 한데 청와대의 정책사령탑 자리를 사이좋게 주거니 받거니 했을 장하성 현 주중대사와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경실련과 함께 대표적 시민사회단체로 통해온 참여연대 출신인 사실을 고려하면, “뒤끝이 좋지 않다”는 말은 문재인 정권 들어와 폭등한 집값 덕분에 두 사람의 재산이 그야말로 “억억” 소리 나게 늘어난 데 대한 평범한 서민대중의 성난 민심에 비추어 차라리 온건하고 유화적으로 느껴질 지경이었다. 소득주도성장이 참담히 실패한 자리에 들어선 ‘불로소득주도성장’은 장하성과 김수현 양자를 위시한 현 정권의 수많은 고관대작들을 단숨에 두둑한 돈방석에 앉혀주었다.

공 : 어떤 평가를 내리셨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고 : 시민단체에 계셨던 분들은 선한 의도와 순수한 마음을 갖고서 정치 참여를 결심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런 초심을 계속 유지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시민운동을 할 때 가슴에 품었던 열정과 순수함과 공익적 사명감이 1년이 지나고, 2년이 흐르고, 3년이 경과하면서 차츰차츰 무뎌지고 무너집니다.

시민사회에서 활동했던 분들이라면 편협한 정파적 관점과 망국적 진영논리를 진정한 국리민복을 위해서 과감하게 뛰어넘어야만 합니다. 실제로 벌어지는 현실정치의 풍경은 그러한 이상과는 크게 동떨어져 있습니다. 시민단체 출신일수록 더욱더 빠른 속도로 맹목적 정파성에, 여야의 이전투구에 함몰되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시민단체는 국민들 사이에서 가장 신뢰와 존경을 받는 사회기구였다. 그러나 현재의 참여연대와 민변은 민주당 계통 정당에서 공천을 받기 위한 오디션 무대 정도로 대중에게 인식되고 있다. 여기에는 민변이나 참여연대 등의 시민단체에서 짐짓 사회의 공정하고 중립적인 옴부즈맨처럼 굴다가, 정치권에 들어간 다음에는 위선적인 ‘내로남불’의 옹호자로 타락한 정치인들의 책임이 결정적으로 크다.

고 : 다른 분야에 종사하다가 정치를 하게 된 분들과 비교할 때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진영논리에 빠지는 속도가 굉장히 신속합니다. 그 중에는 “저 분만은 그러지 않겠지”라고 제가 오랫동안 생각해온 인물들도 있었습니다.

공 : 그래서 전래되어온 속담도 있습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고요. (웃음)

고 : 시민단체 출신들이 보수정당에 가면 극우가 되고, 진보정당에 가면 극좌가 되는 식의 현상이 생겨나곤 했습니다. 본인이 속한 정파의 진영논리에 빛의 속도로 편승하니 본래 가졌던 초심이 온전하게 간직될 리가 있겠습니까? 더 황당한 일은 누가 봐도 초심을 잃었는데 자기들 스스로는 초심을 지키고 있다고 믿는 데 있습니다.

공 : 그런 분들은 나쁜 분들이 아닙니다. 아프신 분들입니다.

고 : 시민사회 출신들이 이상하리만치 빠른 속도로 당파성과 진영논리에 물드는 데에는 그럴 만한 구조적 요인이 작용해왔습니다.

공 : 어떤 구조적 요인인가요?

고 : 시민단체 인사들은 집단화와 조직화가 미흡한 상태에서 개별적으로 정치권에 입문합니다. 그럼에도 다들 나름의 개인적인 정치적 야심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존 정치권과 기성 정당들의 논리와 요구에 재빨리 순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야망과 권력의지는 있는데, 현존하는 질서를 극복하고 돌파할 수 있는 책략과 의지는 미처 체득하지 못했습니다.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의 분석과 진단을 종합적으로 유추해보면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은 자기 자신을 출세시킬 수완은 있어도 세상을 변화시킬 역량은 모자란 셈이었다. 이와 비슷한 유형의 모순적 인간형으로는 과거 군사독재시대에 악명을 떨쳤던 공안검사가 있다.

시민운동으로 얻은 명망은 왜 거품인가

고계현 사무총장은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얻은 명망은 언론의 포장이기 쉽다고 말했다. {사진 김한주 기자)

공 : 시민사회에서의 명성이나 평판과 대중적 인기나 평판은 결이 다른 것인가요? 

고 :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며 획득한 명망은 언론이 만들어낸 거품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듭니다. 시민사회단체를 이끌어온 지도자급 인물들의 이름값은 시민단체들과 빈번히 접촉하면서 그들의 견해와 의사를 대중에게 전달해주는 언론사들에 의해 부풀려진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계현 총장의 설명을 들으며 필자는 느닷없이 안철수 전 국민의대표가 떠올랐다. 언론보도만을 접하고서는 안철수를 ‘소통의 달인’으로 알아왔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와 정치권에서 실제로 선거를 함께 치르고, 정당활동을 같이하면서 안 전 대표를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으로, ‘대화가 되지 않는 인물’로 재평가하게 되었던 연유에서이다.

고 : 물론 시민단체들에 실지로 빼어난 리더십을 갖고 계신 분들이 존재하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여태껏 경험한 바에 의거하자면 어떤 경우와 사태가 닥쳐도 끝까지 소신과 주관을 지킬 것으로 여겨지는 분들은 정작 정치권에서 불러주지를 않습니다. 본인들 역시 정치를 하겠다는 건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공 :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기는 시민사회도 나머지 영역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네요.

고 : 저처럼 시민운동에만 바보같이 순수하고 우직하게 매달리는 사람들에게는 이른바 ‘콜’이 오지를 않습니다. (웃음)

공 : 제가 정당의 핵심 관계자라도 그런 분들에게는 일부러 연락 안 합니다. 가뜩이나 골치 아픈 문제가 도처에 널린 판국에 또 골치 아파질 일을 왜 구태여 자청해 만들겠습니까? (웃음)

고 : 장래에 정치를 할 걸 염두에 두고 시민운동에 뛰어든 분들만의 두드러진 특징이 있습니다.

공 : 어떤 특징인가요?

고 : 정치적 성격을 띠는 시민운동을 주로 한다는 점입니다.

공 : 일종의 우회상장이네요. 여의도 증권가에서 ‘백 도어’라고 부르는….

고 : 그런 분들은 특정 정당에 유리한 주제를 운동의 의제로 삼거나, 또는 특정 선거캠프에 아예 합류를 합니다. 본래부터 시민운동을 해온 분들과는 활동의 궤도와 방향성이 현저히 다릅니다.

공사 구분 없으면 정치적 성공도 없다

고계현 사무총장은 개인적 인연과 공적인 관계를 이제라고 명확하게 구분하자고 제안했다. (사진 김한주 기자)

나는 시민사회의 정치참여에 대한 문답을 금번 인터뷰에서 추가적 후기 정도의 기능과 비중을 기대하고서 기획해둔 터였다. 허나 고계현 총장의 꾸밈없는 솔직담백한 답변으로 말미암아 2부 리그의 주제가 1부 리그로 올라오는 ‘승강제’가 시나브로 연출되었다.

고 :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정치권에서 국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번번이 보여주는 건 시민운동 전체가 책임져야만 할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치권에 간 분들의 초심이 퇴색되지 않도록 그분들에게 때로는 격려의 응원을 보내고, 때로는 비판의 채찍질을 가하는 건 시민사회에 남은 사람들의 몫이자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공 : 하지만 조국 전 법무장관 사태에서 참여연대는 줄곧 침묵을 지켰습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 단계를 넘어 거의 목불인견의 “우리가 남이가” 수준이었습니다.

고 : 바로 거기에 문제의 본질이 있습니다. 시민단체의 구성원에서 정치권의 일원으로 위상이 변화하는 건 국민의 대리자가 되어 공공의 이익을 책임지게 됐다는 의미입니다. 명실상부한 공인이 된 겁니다. 그러면 그가 이전에 소속했던 단체는 한층 더 엄정한 자세와 매서운 눈길로 해당 조직 출신의 인사가 정치를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감시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과거의 인간적 인연과 사적인 친분은 머릿속에서 깨끗이 지워야만 옳습니다.

공사의 구분이 안 되기로는 한국사회에서 진보와 보수의 구별이, 여당과 야당의 차이가 없다. 그런 맥락에서 고계현 총장은 남한의 엘리트 계급에게 너무나 어렵게 느껴질 요구를 하는 중이었다.

개인적 교제의 대상에서 공적인 감시의 대상으로 상대방의 신분이 바뀌었음을 명확히 인지해야 합니다. 시민운동의 정당성과 대표성이 훼손되지 않으려면 시민단체 출신 정치인들이 기존의 정치인들과는 분명 다른, 더 나은 면모를 보여줘야 합니다. 그러자면 그분들의 본가라 칭할 수도 있을 시민사회단체가 기성 정치인들에게 해온 비판의 몇 배에 달하는 비판을 옛날 자기 식구들에게 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시민단체 출신 정치인도 살고, 그의 사회적 고향일 시민단체도 삽니다. 실제는 딴판입니다. 낡은 온정주의에 매몰돼 사사건건 잘못을 애써 눈감아주기 일쑤입니다.

공 : 총장님께서 힘주어 강조하신 공사의 구분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기에는 한국사회의 마당 자체가 너무 좁습니다. 아무리 지지고 볶아도 한 다리만 거치면 다 알 수 있는 관계거든요. 자세히 보면 다들 선배와 후배에, 형이고 아우입니다. 그러니 늘 결론은 “좋은 게 좋은 거지”로 귀착되고 맙니다. 조국 전 장관 사태를 자세히 관찰해보니 요즘 대세라는 ‘언니-동생’ 관계도 ‘형-아우 사이’와 전연 차이가 없었습니다. 남자고 여자고 간에 전부들 끈적끈적한 패거리주의에 잔뜩 물들었습니다.

고 : 시민운동의 본령은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와 감시에 있습니다. 공적인 정신과 감각으로 철두철미하게 무장해야 합니다. 나와 평소에 사적으로 아무리 절친한 사이였어도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지위에 갔다면 개인적 인연에 구애받지 말고 감시하고 비판해야 합니다. 그것도 보다 치열하고 혹독하게요. 우리나라 시민운동은 이 지점에서 철저하지 못했습니다. 깊이 반성하고 성찰해야 할 부분입니다.

저는 경실련에서 저와 한솥밥을 먹었던 사람들이 인사검증 과정에서 흠결이 발견되면 그 즉시 단호하고 명확한 어조로 사퇴를 촉구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잘 아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공적인 사항에만 집중했습니다.

공 :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하면서 몹시 서운하게 여기셨을 텐데요.

고 : 다들 서운해 했죠, 서운하고 섭섭한 감정을 저를 향해 정말 엄청나게 많이 표출했습니다. 제가 발표한 비판성명에 크게 상처를 받았다고 나중에 토로했습니다. 그만큼 제가 엄정하게 했다는 표식이고 증거일 수도 있겠죠. 그러한 공사 구별의 원칙이 지금 시민사회운동에서 지켜지지를 않고 있습니다.

시민사회단체들에서 공사 구별의 원칙이 제대로 작동되어야 시민운동 출신 정치인들이 자신의 선택과 판단 하나하나마다 신중하고 현명한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국민들이 공직자들에게 항상 갖추길 바라는 공정하고 객관적 태도를 유지하게 됩니다. 시민단체와 시민단체 출신 정치인들이 같은 편을 지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방식으로 행동하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침울한 표정으로) 실상은 서로 무조건 밀어주고 끌어주는 잘못된 문화가 최근 몇 년 동안 시민사회에 팽배해지고 말았습니다. 그 때문에 시민운동단체 출신 정치인이 잘못을 저지르면 시민사회진영 전체가 도매금으로 욕을 먹는 상황이 흔히 빚어져왔습니다. 시민운동가와 정치인의 입장은 근본적으로 달라야 마땅하고 바람직한데 그게 마구 뒤섞여버린 탓입니다. (④편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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