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은 나의 힘 : 파비우스 (2)

[뉴스케이프 공희준 기자]

한니발 때문에 궁지에 몰린 로마는 로마판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는 수장에 해당할 독재관에 파비우스를 앉혔다. 사진은 2016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사실상의 독재관으로 군림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출처 : 김종인 페이스북)일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불같은 성미의 야심가인 또 다른 공동집정관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 역시 한니발을 대단찮게 여겼던 것이다. 사단은 파비우스는 카르타고군의 구조적 한계와 전략적 취약성을 간파하고서 궁극적 승리를 확신한 데 비해, 플라미니우스는 이전에 갈리아인들을 상대로 거둔 승전에 도취해 한니발쯤이야 별것 아니라고 경솔하게 속단했다는 점이었다.

플라미니우스는 적과의 전투를 서두르는 동기로 카밀루스의 사례를 꺼내들었다. 과거 이 전설적인 로마의 구세주는 수도와 가급적 먼 곳에서 싸움을 벌이려 시도했었다. 에트루리아를 지나 북상한 플라미니우스의 로마군은 트라쉬메네 호반에서 한니발의 군사들과 맞붙었다. 한창 교전 중에 커다란 지진이 일어났음에도 어느 쪽 장병들도 이를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치열한 접전이 펼쳐졌다.

그는 한니발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1만 5천 명의 로마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전사자들보다 더 많은 숫자의 병사들이 포로로 잡혔다. 한니발은 죽은 로마 집정관의 용맹함을 기리며 그를 정중하게 묻어주려고 했으나 시신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켜켜이 쌓인 수많은 이름 없는 시체더미 속에 이미 깊숙이 묻혔던 탓이리라.

트레비아에서의 패배는 잠깐의 실수일 수 있었다. 트라쉬메네에서의 패전은 명백한 실력이었다. 민회가 소집되었고 행정관 포비우스는 사태의 심각성을 직시할 것을 시민들에게 호소하였다. 곧이어 이심전심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비상한 시기에는 비상한 조치가 필요하고, 그 비상한 조치란 당연히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독재관을 임명하는 일이었다.

누가 독재관에 선출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길고 복잡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다. 파비우스 막시무스를 능가할 적임자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과단성이 있되 품격 또한 있으며, 용기와 분별력이 조화를 이루고, 신중한 판단력과 신속한 행동력을 아울러 갖춘 인물이었다. 더욱이 파비우스는 전쟁이 지우는 육체적 피로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젊었으면서도 헛된 공명심에 휘둘리지 않을 연령대에 도달한 터였다.

독재관에 선출된 파비우스는 마르쿠스 미누키우스를 기병대장 자리에 앉혔다. 전례 없이 상궤를 벗어난 파격적 행동은 따로 있었다. 그가 말을 타고서 부대를 통솔하겠다고 원로원에 통보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독재관은 보병의 일원으로 참전해왔다. 로마의 주력은 보병이고, 아무리 독재관이라도 말까지 타게 되면 폭군처럼 보인다는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파비우스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독재관은 명실상부한 독재자처럼 보여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말은 물론이고 파스케스도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그가 거리에 나설 때마다 24명의 수행원들에게 고위 관리의 행차를 알리는 이 표식을 들고 따라오도록 지시한 까닭이다. 파비우스는 독재권의 권위를 한층 더 돋보이게끔 하려는 목적에서 다른 집정관이 그를 찾아올 경우 부관 없이 혼자 개인 자격으로 방문하도록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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