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은 나의 힘 : 파비우스 (3)

[뉴스케이프 공희준 기자] 파비우스는 신을 찬양하는 것으로 전쟁을 시작했다. 적군이 강해서가 아니라 로마가 약해진 탓에 두 차례의 전투에서 연거푸 진 것이며, 로마가 약해진 건 로마인들이 비겁해져서가 아니라 싸움을 책임졌던 지휘관들이 신들을 섬기는 일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는 핑계 겸 논리를 앞장서 직접 만들어 퍼뜨린 것이다.

파비우스는 사마의처럼 풍부한 병력과 물자를 활용해 적을 지치게 했다. (이미지 출처 : 「사마의 미완의 책사」) 

이는 신들을 달래는 듯하면서 실은 민심을 달래려는 포석이었다. 파비우스는 이탈리아의 모든 가축들이 오는 봄에 낳을 새끼들을 신에게 제물로 바치겠다고 맹세했다. 제단 위의 희생물들이 물론 인간의 뱃속으로 들어갈 것임은 물어보나 마나였다.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서 승리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파비우스가 취한 일련의 조치들은 로마인들이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끔 이끄는 데 목적이 있었다. 남을 믿게 만들려면 먼저 자기 자신부터 믿음을 가져야만 한다. 파비우스는 신이 그에게 승리에 필요한 힘과 지혜를 주었다고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신이 진짜로 그에게 힘과 지혜를 선물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확실한 사실은 로마는 파비우스의 수중에 풍부한 병력과 물자를 쥐어주었다는 점이었다.

풍부한 병력과 물자. 한니발의 군대에는 언제나 부족했던 승리의 두 가지 보증수표였다. 풍부한 병력과 물자는 또 다른 동지를 데리고 로마군 진영을 방문했다. 그건 시간이었다. 시간이 우리 편이면 구사할 수 있는 전술전략이 무궁무진해지기 마련이고, 파비우스에게 그 무궁무진한 전략전술들 가운데 단연 1순위는 장기간의 소모전을 적에게 강요하는 전법이었다.

파비우스가 한니발을 상대로 펼친 작전은 사마의의 계책과 모택동의 책략을 각각 절반씩 섞어놓은 형태였다.

- 첫 번째로 모택동과 닮은 지점

그는 적이 움직이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았다. 만약 적이 움직이면 적의 손쉬운 공격을 허락하는 범위 밖에서 움직이되, 적이 지친 기색을 보이면 즉시 반격이 가능한 지역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 두 번째로는 사마의와 유사한 부분

방어에만 치중하는 파비우스의 소극적인 수비 위주 전략은 후방인 로마에서는 물론이고 심지어 그의 직접적 지휘를 받는 병사들 사이에서마저 격렬한 비판과 성토의 대상이 되었다. 왜냐면 파비우스가 적과의 교전을 극력으로 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마의가 힘이 없어서 싸우지 않는 건 아니라는 걸 촉한의 제갈량은 알아챘듯이, 한니발만은 적장이 용기 없는 허수아비가 아님을 일찌감치 꿰뚫어보았다.

저작권자 © 뉴스케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