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은 나의 힘 : 파비우스 (7)

[뉴스케이프 공희준 기자] 미누키우스가 거둔 소규모 승리는 엄청난 대첩을 이뤄낸 것처럼 로마에서 대대적으로 홍보되었다. 홍보의 주역은 당연히 메틸리우스였다.

로마 정치권의 ‘파비우스 흔들기’는 문재인 정부의 ‘윤석열 흔들기’만큼 집요하고 거칠었다. (사진 김한주 기자)

메틸리우스는 친척의 업적을 칭송하는 걸로 멈추지 않았다. 그는 파비우스 깎아내리기로 도돌이표처럼 되돌아갔다. 파비우스를 무능한 지휘관에 더해서 나라를 좀먹는 역적으로까지 매도했다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매우 악의적이었다. 메틸리우스는 로마의 독재관이 한니발에게 아프리카에서 지원 병력을 증원받을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고의적으로 싸움을 회피하고 있다는 흑색선전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누키우스가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지는 것보다 오히려 더 불안한 일이라는 파비우스의 판단이 이래저래 맞아 들어갔던 셈이다.

메틸리우스에 뒤이어 포룸의 연단에 오른 파비우스는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는 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는 지체 없이 전장으로 복귀해 명령에 불복한 미누키우스를 독재관의 정당한 권력을 사용해 일벌백계하겠다는 방침을 담담히 밝혔다.

독재관의 말은 곧 법이었다. 다만 호민관만이 독재관의 명령에 따르지 않아도 되었다. 메틸리우스는 뿔난 독재관의 노여움으로부터 미누키우스를 보호해 달라고 민중에게 애원했다. 그는 여기에 덧붙여 파비우스를 대체해 조국을 이끌 새로운 독재관을 선출해 달라고 호소했다.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것으로 느껴지는 파비우스의 지구전 전략에 신물이 난 대중에게는 몹시 솔깃하게 들리는 파격적 제안이었다.

시민들은 미누키우스에게 파비우스와 동일한 권능을 부여할 것을 즉석에서 결의했다. 독재관에 필적하는 권력을 행사할 새로운 인물을 세우는 일, 로마 역사에서 이제껏 보지 못해온 미증유의 사태였다.

디오게네스는 견유학파를 대표하는 철학자이다. 디오게네스는 사람들이 그를 조롱하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듣자 조롱에 굴복하는 인간만이 조롱당하는 법이라고 쿨 하게 넘어간 바 있었다. 아Q 식의 ‘정신승리법’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이러한 반응을 파비우스 역시 보였다. 그가 절대권력을 장악한 독재관에서 사실상 강등당한 충격으로 낙담할 것이라던 세간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흔들어도, 흔들어도 돌부처같이 꿈쩍 조차 하지 않는 파비우스 막시무스의 의연한 표정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도입이 강행되고, 문재인 정부의 핵심 실세들이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권력형 비리사건들의 수사를 진행하던 일선 담당 검사들을 신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한직으로 줄줄이 좌천시켰어도 전혀 ‘멘털’이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윤석열 현 검찰총장의 꿋꿋한 태도를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파비우스를 당황하게 만든 건 독재관을 두 명 선출하는 사상 초유의 결정이 나라의 안위에 미칠 악영향이었다. 그는 헛된 미망과 명예욕에 휘둘리는 젊은 장군이 대형사고를 치지 못하게끔 제어하기 위해 서둘러 도성을 은밀히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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