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가 평가사들 압박해 신도시 보상비 낮추려 시도할 수 있어

[뉴스케이프 공희준 기자] “우리나라는 부동산과 관련된 기초정보가 부실하게 구축돼 있습니다. 인공지능 개발에 들어가는 정보와 자료의 상당 부분이 실제로는 전연 쓸모없는 쓰레기 데이터(Junk Data)들일 개연성이 짙습니다. 이런 쓰레기 데이터로는 제대로 된 모형을 돌릴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인공지능의 도입에 앞서서 데이터를 정상화해주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부동산 시장의 실태에 어두울 데이터 기술자들만 갖고서는 이와 같은 정상화 작업을 진행하기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부동산 관련 전문가들의 섬세한 손길을 꼭 충분히 거쳐야 합니다.”

필자와의 인터뷰가 끝난 며칠 후 조정흔 평가사는 이와 같은 내용의 쪽지를 필자에게 인터넷 메신저로 보내왔다. 그는 인공지능만 도입되면 그동안 장기간에 걸쳐 쌓여온 부동산 분야의 적폐가 일거에 시원하게 만사형통으로 청산될 것이라는 일반의 통념이 과도한 기술 만능주의에 근거한 지나친 낙관론에 지나지 않을 뿐임을 널리 알리기 위해 무척이나 부심하고 있었다. 그러면 구두로 진행된 본래의 인터뷰로 이제 다시 돌아가기로 하자.

한국감정원과 감정평가사가 같은 편을 먹으면

조정흔 평가사는 한국감정원이 민간 사업자들을 대리할 경우의 맹점을 조목조목 제시했다. (사진 김한주 기자)

조정흔(조) : 제가 알고 있는 한 평가사님께서 엊그제 행정법원에 감정인 선서를 하러 다녀오신 다음에 제게 전화를 주셨습니다. 피고인 사업시행자 측을 대리해 한국감정원 직원이 출석을 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공희준(공) : 그게 어떤 문제점을 내포한 일인가요?

조 : 한국감정원은 감정평가사들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권한을 가진 기관입니다. 즉 감정평가사를 통제할 권력이 감정원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한국감정원이 특정한 기업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면 어떤 사태가 빚어지겠습니까? 곧바로 심각한 이해충돌 현상이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사업의 시행자는 토지보상가가 무조건 낮아야만 이익을 많이 올리면서 사업성이 높아집니다. 이런 여건과 환경에서 한국감정원이 한쪽에서는 시행사를 대리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토지의 가격을 결정하는 감정평가사를 관리감독하는 건 소송에서 한쪽 변호사가 판사를 관리감독하는 것과 마찬가지 양상입니다.

공 : 토지를 소유한 주민들 입장에서는 진짜 황당한 상황일 듯합니다.

조 : 주민들 입장에서는 시행사와 감정평가사가 한통속이 되어 보상금을 후려치는 것처럼 여겨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어떤 주민이 감정평가 결과를 믿음과 신뢰를 갖고서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럼에도 국토교통부와 토지주택공사는 민간 건설사와 한국감정원이 같은 편으로 묶여 활동하는 왜곡된 구조를 그대로 온존시킨 상태에서 3기 신도시 건설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자기네는 땅장사만 쉽사리 잘하면 된다는 무책임한 발상입니다. 국민적 불신의 대상이 된 엉터리 토지보상 시스템을 손보는 게 3기 신도시 건설보다 먼저 착수해야 할 과제임을 정부는 이제라도 인식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공 : 한국감정원이 감정평가사를 상대로 휘두르는 권력이 그렇게 막강한가요? 예컨대 감정원은 갑이고, 감정평가사는 을인 구도인가요?

조 : 현재는 사실상의 갑을 관계입니다. 한국감정원은 감정평가사들이 내놓은 결과에 대해 타당성 조사를 실시할 수가 있습니다. 감정이 제대로 됐는지 여부를 검증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제주도에서 활동해온 어느 평가사님이 최근에 내린 감정평가 결과가 한국감정원의 타당성 조사 대상이 된 일이 있습니다. 감정원 측에서는 해당 평가사님이 해놓은 평가가 부적절하다며 관리감독권을 행사했습니다. 지금은 3기 신도시 건설이 확정된 시점입니다. 정부가 자신들이 원하는 토지평가 결과와 토지보상금액 산정을 위해 어떤 형태로든 평가사들을 압박하고 제어하려 시도할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하기가 어렵습니다.

공 : 한국감정원이 정부를 위해서 총대를 멜 수가 있다는 말씀이네요.

조 : 예, 그렇습니다. 한국감정원은 감정평가사들에 대한 징계권을 공식적으로 보유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대신에 한국감정원이 감정평가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타당성 조사에 기초해 국토교통부가 감정평가사들을 징계할 수는 있습니다.

공 : 한국감정원이 감정평가사들에게는 ‘다모클레스의 칼’과 같은 공포의 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면 국토부의 징계를 받은 감정평가사들에게 고객들이 선뜻 일감을 의뢰할 리가 없으니까요.

다모클레스의 칼은 사람 머리 바로 위 천장에 가드다란 실로 위태위태하게 매달려 있는 칼이었다.

조 : 그렇습니다. 국토교통부의 징계를 받는 건 일이 나쁜 방향으로 아주 커졌다는 의미입니다.

공 : 한국감정원이 마음만 먹으면 개별 감정평가사들의 밥줄을 언제라도 끊어놓을 수 있다는 모양새네요.

조 : 감정원이 평가사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공 : 한국감정원 때문에 감정평가의 자율성과 독립성과 공정성이 도리어 훼손될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역설적이고 모순적입니다.

조 : 매우 난감한 문제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3기 신도시 딜레마

조정흔 감정평가사는 무리하게 끌어내린 보상비는 가난한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고 말했다. (사진 김한주 기자)

공 : 한국감정원 원장도 대개는 낙하산 인사가 이뤄지나요?

조 : 보통은 외부에서 낙하산이 내려옵니다. 국토교통부 출신의 전직 관료들이 한국감정원장으로 빈번히 임명돼왔습니다.

공 : 감정평가사의 세계도 다른 직역들처럼 보수와 진보로 진영이 갈리나요? 보수적 감정평가사와 진보 성향의 감정평가사들로요.

조 : 저희는 그러한 이데올로기적 갈등과 대립은 겪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런 다툼과 충돌이 너무 없어서 불만입니다. 부동산을 위시한 자산에 대한 감정평가 업무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성격을 띠는 법입니다. 더욱이 경제구조와는 불가분의 상관성을 지닌 일입니다. 그런데 감정평가사가 어떤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고, 경제시스템에서 어떠한 위상을 점하는지를 둘러싼 고민과 논의들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저는 그러한 문화가 이 일을 단순한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해온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적 풍토에 기인하고 있다고 봅니다.

공 : 3기 신도시에 대한 감정평가 작업은 첫발을 뗐나요?

조 : 아직은 시작하기 전입니다.

공 : 그러면 평가사님께서는 언제쯤 감정평가 작업에 본격적으로 돌입할 것으로 예상하세요?

조 : 정확한 작업 일정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문재인 정부가 지금 깊은 딜레마에 빠져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주택공급을 늘리겠다고 큰소리는 펑펑 쳐놨는데, 천문학적 액수의 토지보상금이 시중에 풀리게 되면 부동산 투기 심리를 자극할 게 분명한 걸 정부도 잘 인지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결국에는 최후의 수단으로 토지가격을 통제하는 극단적 대책을 동원할 공산이 큽니다.

공 : 토지보상가를 통제한다는 건 곧 공시지가를 결정하는 감정평가사 집단을 통제하겠다는 의도로 읽힙니다.

조 : 그런 셈입니다. 토지보상비가 너무 적게 책정되면 땅을 많이 가진 지주들은 둘째 치고, 보유한 토지가 대단히 작거나 또는 보상을 받을 만한 재산이 전혀 없는 분들은 커다란 곤경과 낭패를 겪을 수가 있습니다.

공 : 살길이 막막해질 테니까요.

조 : 대규모 주택공급의 미명 아래 감정평가사들을 조종하고 윽박질러 토지보상비를 인위적으로 낮게 설정하는 게 과연 올바른 정부 정책일까요? 저는 여기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공 : 이는 나라가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행위로 보입니다.

조 : 그렇습니다. 매우 심각할 정도로 침해하는 짓입니다. 게다가 현재는 국가로서의 당연한 의무인 국민들을 위한 합리적 설명도 대충 건너뛰려는 모습입니다.

공 : 여러 업무들로 엄청 바쁘실 텐데 귀한 시간 내어 좋은 말씀 들려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조 : 아닙니다. 제가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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