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탄탄대로에 들어선 진중권


김용민 PD는 지난 1월부터 자신의 거취와 관련한 중대결단을 고민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사진 박진선 기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인생은 당장은 힘들고 팍팍할 게다. 그는 적잖은 월급이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교수 자리를 결과적으로 잃었고, 그의 책을 구매해주던 소비자들 가운데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맹목적으로 무조건 편드는 정치 성향을 지닌 독자들은 대거 떨어져나갔다. 진중권 입장에서는 이중삼중의 타격이리라.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는 법이다. 문재인 정권의 기세가 아무리 등등한들 흘러가는 시간을 거꾸로 돌리기는 불가능하다. 작게는 유승민의 목을, 크게는 국민들의 목을 비틀려고 시도했던 박근혜 정권의 말로가 어땠는지는 삼척동자조차 다 아는 사실이다. 좁게는 진중권의 목을, 넓게는 야당과 언론 전체의 목을 비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문재인 정권을 기다릴 운명도 박근혜 정권의 그것과 특별히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말솜씨를 장착한 진중권은 거칠 것이 없다. 지금은 활자는 맥을 못 추고 화면의 위세는 나날이 강해지는 영상시대다. 문재인 정권이 막을 내리면 진중권의 앞길에는 넓고 곧은 탄탄대로가 활짝 열리게 된다. 양심과 소신을 꿋꿋이 지켜낸 이 시대의 참된 지식인의 표상으로 자리매김한 진중권을 원하는 수요는 정치권과 방송가, 출판시장과 문화예술계를 막론하고 도처에서 전천후로 폭발할 것이 분명하다.


진중권의 숙적이자 경쟁자 격이었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얼마 남지 않은 이른바 문빠들을 겨냥한 신앙간증 행사와 부흥회 개최 등의 어장관리 사업을 빼면 별다른 비즈니스 모델이 더는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그 얼마 남지 않은 문빠 시장은 김어준과 유시민을 넉넉히 먹여 살릴 수준의 규모는 그럭저럭 충분히 유지되어갈 것으로 보인다.


닭이 먼저냐, 새벽이 먼저냐



닭이 울기에 해가 뜨는 게 아니다. 해가 뜨기에 닭이 우는 것이다. 필자는 논객으로 뭉뚱그려져 통칭되어온 인물들을 횃대 위에 올라선 수탉 같은 존재로 여긴다. 이들이 아침을 만들지는 못한다. 그러나 아침이 온 것을 알릴 수는 있다.


박근혜 정권이건, 문재인 정권이건 권력은 왜 예외 없이 어리석고 근시안적일까? 닭이 울지 못하도록 막으면 해가 뜨지 못하게 할 수 있다고 권력자들이 철석같이 믿는 탓이다. 그들은 인과관계의 선후를 근본적으로 헷갈려온 셈이다.


비단 권력자들만이 원인과 결과의 순서를 착각하는 건 아니다. 논객으로 불리는 사람들 가운데, 범위를 넓혀 지식인으로 칭해지는 인간들 중에서 상당수가 닭이 해를 뜨게 한다고 혼동하기 일쑤였다. 닭 탓으로 해가 뜨는 게 아니듯, 닭 덕분에 해가 뜨는 것도 아닌데…. 


문재인 정권의 권력 수뇌부는 진중권의 말길을 억누르지 못해 민심이 이반한다고 얼토당토않게 오인하는 기색이다. 임미리 교수와 경향신문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선거법 위반 고소 소동도 이와 같은 착시 현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진중권의 죽비소리 같은 쩌렁쩌렁한 비판의 목소리는 민심 이반의 결과물이지 원인이 아니다. 따라서 문재인 정권이 진중권의 입을 가장 효과적으로 틀어막을 방법은 나라를 잘 이끄는 데 있다. 문제는 문재인 정권에는 국정을 유능하고 책임감 있게 운영해 나라를 훌륭히 이끌 능력도, 의지도 현재로서는 없다는 점이다. 진중권이 맞이한 제8의 전성기가 그가 과거에 경험한 모든 전성기들과 견주어 길고 화려할 것이 확실시되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진중권의 전성기는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까? 그가 본인의 독설이야말로 문재인 정권을 몰락시킨 핵심적 원인으로 작용했다며 요란한 자화자찬에 나서는 바로 그때가 진중권의 전성기가 끝나는 순간이 될 것이다. 새벽이 오래전에 지나서 이미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눈치 없이 계속 시끄럽기 울어대는 닭이 갈 곳은 마늘 숭숭 썰어 넣은 물이 팔팔 끓고 있는 가마솥뿐이다.


소확행을 선택한 김용민



필자는 지난달인 1월 초에 김용민 PD와 마포구 망원동에 위치한 벙커1교회에서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다. 내가 자기와는 정치적으로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의 인터뷰 요청에 흔쾌히 응해주었다.


필자의 뇌리에 그날 유달리 강한 인상으로 남은 장면은 김용민 PD의 아이들이 즐겁고 천진난만하게 뛰어노는 모습이었다. 그의 막내가 필자의 딸과 비슷한 또래인 터라 아이들의 흥겨운 재잘거림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당시의 인터뷰에서 글로 옮기지 않은 내용이 있다. 그는 아이들이 아빠가 예전에 했다는 막말이 뭔지를 서서히 궁금해가기 시작했다며 조금은 우울하고 당혹스러운 심경을 토로했다. 이때 필자는 그가 스스로의 거취와 관련된 모종의 중대결단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음을 어렴풋이 눈치 챌 수 있었다.


김용민이 남몰래 홀로 끙끙대며 고민했을 중대결단은 KBS가 방송하는 「거리의 만찬」이라는 교양 프로그램의 여성 진행자 교체 파동에서 그가 기존 진행자들을 강제로 낙마시키는 악역 비슷하게 등장하며 더 이상 피할 수도 없고 미룰 수도 없는 필연적 선택이 되었을 성싶다.


나는 텔레비전 자체를 거의 시청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거리의 만찬」이 얼마나 재미있고, 어느 정도의 사회적 파급력을 발휘해왔는지 전연 가늠하지를 못하겠다. 단, 프로그램 개편이 마치 김용민 개인의 사익 추구를 목적으로 강행된 것처럼 여론의 분위기가 형성된 건 낙타의 허리를 부러뜨리는 마지막 한 개의 지푸라기가 되었으리라는 부분만큼은 자신감을 갖고서 말할 수가 있다. 그러한 낭패스러운 구도로 말미암아 김용민의 맷집과 내구력은 마침내 임계점에 도달했을 것이다.


진중권이 논객 1세대의 간판스타라면, 김용민은 글이 아닌 말을 위주로 성장해온 논객 2세대의 선두주자였다. 논객의 힘은 살아 있는 권력을 꾸짖는 과정에서 명분과 동력의 8할이 생겨난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은 생활인 김용민에게는 황금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지만, 논객 김용민에게는 암흑기의 시발점이었다. 김용민의 이념적 좌표는 그가 살아 있는 권력들 중의 살아 있는 권력일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마음 놓고 자유롭게 질타하는 일을 허락하지 않았다.


논객과 생활인은 천사와 악마처럼 공존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생활인 김용민의 득세는 논객 김용민의 굴욕을 뜻했다. 그가 진행을 담당해온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서 내려오겠다는 선언은 생활인 김용민이 논객 김용민에게 일방적으로 압도당하는 사태에 이제는 과감하게 종지부를 찍겠다는 비장한 각오의 선포로 내게 들렸다.


수십만 명의 팔로워를 몰고 다녀도, 그가 쓴 글을 유수의 언론매체들이 받아 보도해줘도 논객도 결국에는 사람이다. 출세하고 성공할 기회를 맞이하면 놓치지 않고 꽉 붙잡고 싶은 욕망이 발동하고, 앞에서 재롱 피는 자식 얼굴 바라보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열혈 지지자들은 진중권이 물 들어올 때 영악하고 약삭빠르게 노 젓고 있다며 그가 최근에 보여주는 왕성한 활동을 마구 폄하하고 있다. 그런데 물 들어올 때 ‘닥치고‘ 부지런히 노 저은 건 유시민이나 「나꼼수」 일행도 매한가지였다. 내가 진중권에게 바라는 것은 다음에 올 사람을 위해서 노 젓는 물을 깨끗이 사용해달라는 것이다.


「나는 꼼수다」의 인기와 문재인 정권의 등장은 김용민을 권력의 기쁨을 아는 몸으로 진화시켰다. 그렇지만 권력의 기쁨은 김용민으로부터 논객의 기쁨을 앗아갔다. 논객의 기쁨보다도 최소 백배는 더 중요하며, 권력의 기쁨보다 적어도 천배는 더욱더 가치 있는 소중한 기쁨일 가족의 기쁨을 자칫 통째로 뒤흔들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을 조성하고 말았다. 공중파 방송에서 미련 없이 전격 하차하기로 작심한 김용민의 결정은 그가 권력의 기쁨이 허망한 물거품에 불과함을 적절한 시기에 깨달았다는 증거로 해석될 수가 있다. 김용민은 가족의 기쁨을 제대로 아는 몸이 비로소 된 것이다.


논객질이든, 방송일이든 궁극적으로 나와 내 가족이 행복하자고 하는 짓이다. 진중권의 교수직 사퇴도. 김용민의 방송 하차도 행복하게 살기 위해 내린 선택이다. 사람은 손에 움켜쥔 것들을 내려놓을 때 되레 행복해지는 경우가 많다. 김용민과 진중권 두 사람은 수중에 기득권으로 가져온 자리와 권력을 더 크고 오래갈 행복을 위해 기꺼이 내려놓았다.


나는 유시민과 김어준도 진중권과 김용민이 체득한 삶의 지혜를 너무 늦기 전에 본받고 받아들여 손에 억지로 부여쥐고 있는 헛된 권력과 명예를 하루빨리 내려놓고 행복한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당신들이 지금 양손에 악착같이 쥐고 있는 건 권력이라는 형태를 띤 곧 터질 무서운 시한폭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TAG
0
기사수정
  • 기사등록 2020-02-14 17:55:01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문화체육관광부
정책공감
포커스 뉴스더보기
국민신문고
영상뉴스더보기
  • 기사 이미지
  • 기사 이미지
  • 기사 이미지
  • 기사 이미지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