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은 나의 힘 : 파비우스 (15)

[뉴스케이프 공희준 기자]

파비우스 막시무스는 한국의 배우 김보성만큼이나 의리를 중시하는 사나이였다. 그는 의리 없는 자들을 이용은 하되 목적을 이루자마자 그들에게 의리를 버린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했다. (이미지는 김보성이 광고모델로 등장한 CF 동영상 캡처)

로마가 이탈리아 남부의 요충지인 항구도시 타렌툼을 수복하는 계기도 농밀하고 끈적끈적한 남여상열지사에서 비롯되었다. 한니발이 도시의 수비를 맡긴 브룻타이 족 출신 지휘관이 로마인 여인과 사랑에 빠져 로마 쪽으로 전향한 것이다. 여인의 오빠가 여동생이 적장의 연인이 된 사실을 알아내고는 누이의 소개로 브룻타이 족 장수를 만나 뇌물공세를 펼친 게 주효했다.

브룻타이 족 장수는 용병으로 카르타고에 고용된 자였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나라가 망하는 지름길로 용병에 의존하는 경우를 예로 든 것이 무리가 아니었다. 이 전형적인 미인계의 총연출자가 파비우스였음은 물론이다.

그렇다고 미인계 같은 고리타분한 음모만 믿고서 소극적으로 태평스럽게 멍을 때리고 있을 우리의 파비우스가 아니었다. 최후의 승리는 철혈로 이뤄져야 했다. 파비우스는 타렌툼 공략전에서 평상시의 그답지 않은 잔인하고 냉혈한적 면모를 보여줬다. 필자가 굳이 그를 위해 변명을 하자면 타렌툼이 로마를 배신한 사건이 그의 격렬한 분노를 촉발시켰을지도 모른다. 적은 용서해도 배신자는 용서하지 않은 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인류의 오래된 습성이다.

브룻티이 족 장수가 로마의 계략에 직방으로 넘어간 진정한 원인이 이 대목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파비우스는 타렌툼을 공격하기에 앞서 브룻티움과 카울로니아를 차례로 유린했다. 고향인 브룻티움의 안위가 염려된 용병대장이 속히 전투를 종식시키려는 목적에서 그가 방비를 담당한 구역의 성벽의 수비를 일부러 허술하게 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의 선의는 보답을 받지 못했다. 파비우스는 타렌툼을 점령하지마자 그에게 협력한 브룻타이 족 사람들을 무차별로 도륙했다. 한번 배신한 자들은 또 언제 배신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낳은 학살극이었다.

전투가 끝난 이후 3만 명의 타렌툼인들이 로마에 노예로 팔려갔다. 복수심에 불타는 로마 군대는 시내 곳곳을 약탈해 3천 탈란톤에 이르는 재부를 로마의 국고에 귀속시켰다. 파비우스는 노예와 약탈한 금은보화에 더해 거대한 헤라클레스 조각상도 로마로 가져와 그의 두 번째 개선행진을 빛내주는 전리품으로 등장시켰다. 자신의 내면에서 오랫동안 억눌려왔던 하이드 씨가 맘껏 활개를 치도록 그는 내버려두었다.

타렌툼 탈환전에서 한 가지 더 유별났던 점은 그가 휘하 병력의 일부를 소모품처럼 함부로 굴렸다는 것이다. 적군에서 편을 바꿔 귀순한 자들과 시칠리아에서 마르켈루스의 명령으로 불명예 제대당한 로마 군인들이 그들이었다. 8천 명으로 이뤄진, 군대라기보다는 도적떼에 가까운 이 무리의 충성심을 시험하고 그들에게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주기 위해 그는 고의적으로 병사들을 폭력적으로 학대했을 것으로 필자는 조심스럽게 추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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