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위기 상황서 민심 얻은 지도자...두 차례 '정직'은 두 번 옷 벗은 '백의종군'과 닮아

[뉴스케이프 정국진 기자] 윤석열, 가히 문제적 인물이다.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라는 질문에 전문가들은 다섯 손가락 안에 그의 이름을 불렀다. 대체로 정치인이나 재벌 총수가 차지하는 자리이다. 검찰 내 인사권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 의해 좌지우지되면서 ‘식물총장’으로 전락한 올 여름의 설문인데도 그랬다. 검찰총장에 갓 임명된 작년만 해도 시사저널이 주관한 같은 설문에서 그는 61위였다. 내년이나 내후년이라면 같은 설문에서 1위를 차지할지도 모를 일이다.

윤석열 검창총장 (뉴스케이프 자료사진)

그는 이미 정직 처분을 받은 적이 있다. 국가공무원으로서 이만한 불명예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번 더 정직 당했다. 서로 정반대의 정권 하에서 각각 한 번씩, 그의 ‘정직(停職)’은 그가 ‘정직(正直)’하기 때문이라는 진실 같은 농담도 나온다. 검사로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다 보니 얻게 된 훈장이라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도 그랬다. 장군은 두 번이나 옷을 벗어야 했던 백의종군(白衣從軍)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윤석열이 당한 정직과 같은 처분이다. 이순신은 수천 여진족 기마병에게 기습당했음에도 불과 수십 명으로 방어에 성공하고 도리어 반격까지 해냈다. 상을 받아도 모자랄 전공이었으나 첫 번째 백의종군을 당했다. 이순신으로부터 병력 지원 요청을 받았음에도 거절한 상관이,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 들다 보니 일어난 일이었다.

두 번째 백의종군은 더 기가 막히다. 지금의 윤석열처럼 최고권력자와 그 권력자의 눈치를 보는 이들로부터 철저하게 왕따당하는 가운데 이순신은 조선 수군 총책임자의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심지어 이순신을 추천했던 친구 류성룡마저도 부화뇌동했다. 군왕 선조가 이순신을 싫어해서 신하들로 하여금 깎아내리도록 유도하니 도리가 없었다. 압도적인 군공(軍功)이 선조가 의도했던 사형을 겨우 면해 주었다. 아니었으면 송나라의 충장(忠將)이자 민족영웅 악비가 역대급 간신 진회의 모함으로 왕에 의해 죽임을 당했던 것처럼 이순신은 허망한 최후를 맞았을지 모르는 일이다.

이순신을 질투해 선조를 부추겼고 그 덕에 후임자가 된 것은 원균이었다. 그가 칠천량에서 모든 조선 수군 전력을 몰살시키고 나라를 빼앗길지도 모르는 임진왜란 최악의 위기를 만들고 나서야 이순신은 직에 복귀했다. 예정보다 일찍 원래 자리에 복귀한 이것 역시 윤석열과 같은 서사를 갖는다. 이미 백의종군 때 그를 지키려 너나없이 나섰던 백성들은 그가 복귀할 때 서로 앞다퉈 이순신을 환영했다. 그는 국가 위기 상황에서 그 어느 누구보다 민심을 얻었던 지도자였다.

질투하고 그를 괴롭힌 소인배 원균과 못난 권력자 선조는 도리어 그의 위대함을 돋보이게 한다. 한 검찰 간부는 윤석열의 징계를 주도한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을 직접적으로 원균에 빗대 화제가 됐는데, 문제는 윤석열에게는 원균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원균은 조정 관리들에게 뇌물을 바치고 여론전을 펼쳐서 공론장을 왜곡시켰고 졸장인 자신을 희대의 맹장인 것처럼 둔갑시켰다. 요즘 말로 ‘언론 플레이의 달인’인 셈이다. 올바른 사람이었던 장군의 눈에 그런 원균은 난중일기에 ‘원흉(元凶)’이라고까지 묘사된다. 온갖 범죄 혐의를 받고 있고 공직에 있는 동안에는 무능의 표상이었지만 언플과 속임수를 덕지덕지 발라 개혁의 화신인 것처럼 구는 현 정부의 전현직 고위직 몇몇이 떠오른다.

흥미로운 것은 이순신이 백성들로부터 받는 인기를 질투한 선조는, 그 누구보다도 그의 군재(軍才)를 일찍 알아본 사람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이순신은 2년만에 종6품에서 정3품이 됐는데 조선 역사상 이와 같은 승진은 중종 때의 조광조 정도를 제외하면 유례가 없었다. 전쟁을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조는 기어이 무리한 승진을 관철시켰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선조의 최대 업적이기도 하다. 선조가 그를 승진시키지 않았다면 임진왜란의 전황이 어떻게 됐을지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하지 않은가.

그리고 이는 윤석열이 ‘적폐와의 전쟁’을 위해 발탁돼 평검사에서 단번에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또 2년만에 기수를 네 계단이나 뛰어넘어 검찰 최고 수장의 자리에 오른 것과 비견된다. 참모들과 검찰 내외의 반대를 뚫고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만들어낸 인사였다. 세간에는 “살아있는 권력에도 엄정하라”는 대통령의 엄명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임명한 것이 문재인 최고의 업적이라는 말까지 떠돈다.

공주를 지역구로 하는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아버지가 공주 출신인 윤석열을 ‘고향 친구’이자 ‘조선제일검(劍)’이라고 부른다. 윤석열 본인이 얼마나 충청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한번도 언급한 적이 없기에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뚜렷하게 확인되는 것은 그는 대전지검 논산지청장 및 대전고검 검사로 일하는 등 충청과의 인연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대전고검 평검사로 있을 때는 그를 눈엣가시로 여겼던 서슬퍼런 박근혜 정권이 한직으로 내몰았을 시기다. 인생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 그를 품고 어루만졌던 곳은 그의 선친의 고향 충청이었다.

장군도 그랬다. 아산이 장군의 유년기를 품었던 것은 충청의 자부심으로 잘 알려져 있다. 헌데 장군 어머니의 고향인 충청이, 장군이 가장 힘들었을 시기마다 그의 마음을 달래고 품어주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두 차례의 백의종군 때, 효로 받들었던 어머니의 장례 때 장군은 아산의 집에 와 있었다. 장군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 충청의 산하(山河) 아래 그는 마음을 닦고 더 크고 중요한 일을 준비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을 다해 적을 몰아낸 그는 한민족의 영원한 성웅(聖雄)으로 남아 있다.

나라가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혼탁한 이 시대, 조국(祖國) 최대의 적은 불의와 불공정이라는 데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이다. 내년 7월 퇴임 이후에도 “사회에 봉사”하겠다는 윤 총장이 불의와 불공정이라는 대한민국 최대의 적을 몰아내는 데 성공한다면 과연 이순신에도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의 미래에서도 이순신을 볼 수 있을까.

글: 정국진 시사평론가·前 국회 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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