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준비 못한 은행 "구체적 내용 제도 시행 직전에 발표"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뉴스케이프 길나영 기자] 복잡하고 위험이 큰 금융투자 상품 가입 시 최소 이틀 이상의 숙려기간을 부여하는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숙려제'가 본격 도입된 가운데 금융권 안팎에선 이에 대해 엇갈린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은행권 일부에선 당국의 '조급증' 탓에 부담이 늘어났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난도상품을 판매하려면 이사회 의결·상품설명서 수정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금융당국의 구체적 규정 고지가 시행일이 임박해서야 이뤄졌다는 것이다. 반면 당국은 지난해 1월과 2월, 입법예고를 해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고 반박했다. 

◆ 불완전판매 방지 신호탄…'소비자보호' 취지 담겨

금융당국이 지난 10일부터 원금 20%를 초과하는 손실이 날 수 있는 파생결합증권 등을 고난도 금융상품로 규정하는 개념을 새로 도입했다. 이에 따라 해당되는 상품에는 강화된 투자자 보호장치를 적용한다는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시행령·금융투자업규정 개정안이 적용됐다.

이는 지난 2019년 대규모 원금손실을 초래한 '해외금리연계형 DLF 사태'로 금융사들의 불완전 판매가 문제로 지적된 데 따른 후속조치다.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은 구조가 복잡하고 위험이 큰 금융투자상품을 이른다. 원금의 20% 넘게 손실이 날 수 있는 ▲파생결합증권(DLS) ▲파생결합펀드(DLF) ▲주가연계증권(ELS) ▲ELF를 포함한다. 이러한 상품을 판매한 은행에는 판매·계약 체결 등 전 상담 과정을 녹취해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

다만 ▲구조화상품 ▲신용연계증권 ▲주식연계상품 ▲수익구조가 시장변수에 연계된 상품 ▲기타 파생형 상품(CDS 등) 등 거래소 상장 상품은 제외된다.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에 가입할 때는 최종 계약에 앞서 손실 등을 따져볼 수 있도록 2일 이상의 숙려기간이 주어진다. 숙려기간 후 투자자가 서명·기명날인·녹취·전자우편·우편·ARS 등으로 청약 의사를 다시 한번 밝혀야만 계약이 최종 체결된다. 

또 원금을 20% 넘게 잃을 가능성이 있는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에 가입했더라도 숙려기간이 지난 후 투자자가 투자의사를 확정하지 않으면 투자금은 반환된다.

녹취·숙려 제도는 소비자보호를 위한 당국의 내부 통제로 여겨진다. 투자자 보호조치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추가 보완방안으로 고객과 금융회사 간 분쟁 발생 등에 대한 최소한의 예방조치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은행권은 가뜩이나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펀드 판매가 더 위축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고난도 상품 숙려제’ 도입…은행권 "준비 못해" VS 당국 "기간 충분해"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매과정에 대한 녹취와 숙려기간 보장제도 도입에 따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은행은 지난 10일부터 94개(중복 포함) 상품에 대한 판매 중단에 들어가며 난색을 표했다.

판매가 중단된 상품은 대부분 상장지수펀드(ETF)를 편입한 국내주식 파생형 증권투자신탁이나 해외 채권 등에 투자하는 역외펀드로 알려졌다.

업계는 고난도 금융상품 판매 규칙이 촉박하게 나와서 상품설명서 등 준비 작업을 마치지 못해 일시적으로 중단했다는 입장이다.

실제 고난도 금융상품의 정의, 고난도 금융상품 판매에 필요한 절차, 투자설명서에 들어가야 할 내용 등이 구체적으로 담긴 '금융투자업규정 일부개정규정'이 제도 시행 1주일 전인 이달 3일에야 발표됐다.

새 규정에 따라 고난도 상품을 판매하려면 은행이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하며, 상품 투자설명서에는 '손실위험에 대한 시나리오 분석결과'와 '해당상품의 목표시장 내용·설정근거'가 포함돼야 한다.

관련 내용 보완에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운용사는 은행 측에 상품판매 중단을 요청했고 당장 이사회를 열지 못한 은행들은 판매를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숙려기간 도입으로 펀드시장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며 "은행 창구에서 고객에게 펀드상품을 권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예컨데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의 대표적인 주가연계증권(ELS)의 경우 상품 특성상 모집기간이 5영업일 정도로 비교적 짧은 점을 감안하면 소비자가 사실상 권리 행사를 포기해야 가입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업계 불만에 대해 금융당국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이미 지난해 초부터 입법예고를 통해 관련 제도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과 관계자는 "이미 지난해 1월과 2월에 입법예고한 사실"이라며 "입법예고 기간에는 뭐 하다가 이제와서 판매 규칙이 촉박하게 나왔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융투자업규정 일부개정규정'은 오히려 은행들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향으로 바뀌었다"며 "충분한 기간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측면에서 준비 작업을 마치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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