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케이프 전수영 기자] 낚시가 힘든 건 물고기 입질을 한없이 기다려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날씨가 온화할지를 모른다는 것에 있다. 주중 화창한 날씨가 이어지다가도 주말만 되면 비가 올 듯 두꺼운 먹구름이 끼기도 아니 비가 내리기도 한다. 그나마 비는 낫다. 바람이 불면 최악이다. 그런데 이번 출조에는 날씨가 도와줬다. 쨍한 태양이 머리 위로 떴다. 온화하다 못해 더울 지경이었다.

▲멀리 보이는 주황색 지붕 건물 왼쪽에 있는 곳이 잠진도 유일의 점방이다. 이곳에서는 간단한 부식과 라면 그리고 주인이 만들어서 내주는 음식을 판다. (사진=전수영 기자)

이번 출조는 인천의 잠진도다. 잠진도는 물이 들어오면 잠길 듯 말 듯하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매우 작은 섬인데 오래전에 연륙교가 놓여 현재는 섬이 아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왕복 2차선의 좁은 연륙교로 인해 물이 들어찼을 때 건너려면 물에 빠질 듯한 스릴이 있었지만 지금은 도로가 넓어져 이런 짜릿함을 느끼지는 못한다.

잠진도는 수도권 낚시인들에게는 꽤 잘 알려진 낚시 포인트이기도 하다. 사시사철 손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우럭, 노래미, 붕장어, 망둥이 그리고 부세와 상어도 나오는 곳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바로 앞 대무의도를 오가는 여객선이 있었지만 무의대교가 놓이며 여객선은 운항을 멈췄고 여객선 선착장에는 낚시인들이 몰린다.

이곳은 아주 오래된 재래식 화장실만 있을 뿐 편의시설이라고는 점방 하나가 전부다. 크지 않은 점방에는 과자부스러기를 비롯한 먹거리 몇 종류와 생수, 라면 정도를 판다. 그리고 낚시인들을 위해 낚시 소품도 갖췄다.

그렇다고 이 점방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점방 아주머니는 손수 음식을 만들어 파는데 솜씨가 나쁘지 않아 배고픈 낚시인들의 허기를 달래준다. 요즘에는 갑오징어볶음을 파는데 무척이나 먹음직스럽다. 이곳은 몇 년 전 TV 예능프로그램 '불타는 청춘'에 출연한 임재욱이 무의도행 여객선을 타기 전 허기를 달래기 위해 라면을 먹은 곳인데 그 이후 라면 먹는 이들도 제법 되는 듯했다.

▲전어를 잡기 위한 낚시인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사진=전수영 기자)
▲전어채비는 찌를 쓰기도 쓰지 않기도 한다. 자신만의 낚시 방법으로 전어를 유혹하는데 물가에서는 물고기를 잡는 이가 최고다. (사진=전수영 기자)

주말이라 그런지 선착장 양쪽에는 이미 많은 낚시인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선착장을 내려가며 슬쩍 물어보니 전어가 들어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평소 원투(遠投)낚시를 즐기는 이들이 주를 이뤘던 곳인데 거의 모두가 전어 채비로 내림낚시를 하고 있었다. 가을의 별미로 잘 알려진 전어는 떼를 이뤄 다니는데 낚시를 하다 보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전어가 몰려올 때는 바다가 검은색으로 변하기도 한다.

전어낚시는 참 간단하다. 아주 작은 바늘이 달린 채비 위나 아래에 반짝이는 어피(魚皮)를 달아 놓고 물에 던진 후 위아래로 고패질을 하면 전어가 반짝이는 물체에 반응해 바늘을 문다. 이게 전부다. 미끼도 필요 없는 가성비 최고의 낚시다. 고등어나 전갱이, 삼치 낚시도 이렇게 반짝이는 물체를 이용해 한다.

전날까지만 해도 전어가 잘 나왔다고 했는데 오늘은 신통치 않은 듯했다. 선착장을 내려가는 동안 아무도 물고기를 낚지 못했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 딱 한 대만 폈다. 첫 캐스팅을 하고 의자에 앉는 순간이 매우 행복하다. (사진=전수영 기자)

물이 빠지는 시간이라 선착장 제일 끝으로 내려가 얼른 채비를 갖추고 멀리 던졌다. 대략 100여m 정도 날아간 듯하다. 이제부터는 의자에 앉아서 입질을 기다리면 된다.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기다리면 되니까 말이다.

그때 옆에서 전어를 기다리는 중년 낚시인이 "잡았다"를 외친다. 곧이어 은빛 비늘이 반짝이는 20센티가량의 튼실한 전어가 올라온다. 다른 이들의 이목이 쏠린다. 이 중년 낚시인은 뿌듯한 표정으로 바늘에서 전어를 뗀다. 낚시인이 기분 좋을 때 가운데 하나가 많은 이들이 손맛을 못 볼 때 혼자서 물고기를 건져낼 때다. 이 분도 지금이 딱 그럴 때인 듯하다.

▲잠진도 선착장 오른쪽 바다 위에 놓인 무의대교. 무의대교가 생기기 전까지 건녀편 대무의도에 가기 위해서는 여객선을 타야만 했다. 지금은 무의대교만 넘으면 그만이다. 주말 무의대교는 길다란 주차장이 될 정도로 차량 통행이 많다. 사실 대무의도보다 옆에 있는 실미도가 영화로 인해 더 유명하다. (사진=전수영 기자)

사실 전어낚시는 경기도 화성의 궁평항이 유명하다. 가을이 되면 궁평항에는 수백의 낚시인들이 전어를 잡기 위해 몰린다. 이들이 낚시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그것에 비하면 단출한 느낌이지만 이날 잠진도 선착장은 궁평항의 열기만큼 뜨거웠다.

한 사람이 전어를 잡으면서 여기저기서 "잡았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떼로 다니는 전어 특성상 한 사람이 잡으면 다른 이들도 잡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전어를 잡는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원투낚시를 하자니 조금 뻘쭘했지만 그래도 이 느긋함을 즐기는 것이 진정 고수가 아니겠는가.

▲잠진도와 대무의도를 오가던 여객선. 지금은 운항을 멈추고 바다 위에 떠있다. (사진=전수영 기자)
▲잠진도 건너편 대무의도 큰무리선착장. 여객선이 정박하던 곳인데 지금은 텅 비어 있고 간혹 여행객들이 내려와 풍경을 감상하기도 한다. (사진=전수영 기자)

뙤약볕에 손등이 타고 있는데 입질이 전혀 없다. 몇 번이나 지렁이를 갈았지만, 낚싯대는 말뚝처럼 박혀 있을 뿐이다. 낚싯대와 채비를 바꿔 전어낚시를 해볼까 했지만 적성에 안 맞는 걸 억지로 하는 건 별로라 일단 기다려본다.

그렇게 또 한 시간가량이 지나가고 있을 때 초릿대가 살짝 움직였다. 물살이 아닌 확실한 입질이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지렁이를 한 번에 빨아들이는 어종이 있지만 보통은 지렁이 끝을 살짝 물어 당겨본 후 이상이 없다고 생각하면 그때 무는 습성이 대부분이다. 처음 지렁이 끝을 살짝 당기는 것이 예신이고 지렁이를 덥석 무는 게 본신이다. 물론 예신을 몇 번이나 하다가 돌아가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그렇다고 예신에 챔질해봐야 낚을 확률은 0%이니 끈기를 갖고 기다리는 게 정답이다.

예신이 있은 후 잠시 잠잠했다. 그러다가 다시 초릿대가 끄덕인다. '참자. 참자. 물어라. 물어라' 맘속으로 계속 외친다. 갑자기 초릿대가 크게 인사를 한다. 바로 이때가 챔질 타이밍이다. 주저하지 않고 챔질한 후 릴을 몇 바퀴 감으니 물고기가 물려 있는 느낌이 왔다. 어깨가 빠질 듯 릴을 감았다. 제법 묵직한 느낌이다.

그 순간 주변에서 "뭔가 있나본데", "큰 놈인가" 등 호기심 어린 말들이 이어진다. 드디어 물고기가 수면 위로 스케이트를 타듯 끌려오는데 "노래미네"라고 누군가 훈수한다. 멀리서 봐도 노래미가 틀림없다. 그렇게 끌어올리니 20센터가량의 노래미다.

▲대략 두 시간가량 지난 후에 손맛을 보여줬던 쥐노래미. 20센티 전후 크기다. 다시 바다로 돌려보냈다. (사진=전수영 기자)

오늘은 대상어를 정하지 않고 왔기에 노래미를 챙길까 하다가 어차피 몇 마리 안 나올 듯한 분위기라 챙기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바다로 돌려보냈다. 잡는 맛도 좋지만 다시 놔주는 것도 기분 좋다.

다시 한번 멀리 미끼를 던진다. 시원하게 날아가는 봉돌을 바라보니 참 좋다. 또다시 기다림의 시작이다. 오른쪽 보이는 무의대교 위로 차들이 꽉 막혀 있다. 섬으로 들어가는 차는 많고 나가는 차는 적다. 늘 그렇듯 주말 무의대교는 그야말로 주차장이다. 배를 타지 않아도 되니 주변에서 많은 이들이 대무의도와 소무의도로 들어간다. 건너편 대무의도 큰무리선착장에는 몇 명이 나와 있다. 낚시를 하는 건지 그냥 구경 온 건지 모르겠지만 한가롭고 여유로워 보인다.

갑자기 초릿대가 크게 휘청인다. 넋 놓고 주변을 살펴보다 깜짝 놀라 얼른 낚싯대를 들어 챔질을 했다. 묵직하지는 않지만 뭔가 있다. 신나게 팔운동을 하듯 릴을 감아 확인해보니 애기 우럭이었다. 우럭은 먹이 욕심이 많은 어종으로 예신 없이 먹이를 통째로 삼키기도 한다. 먹이를 물고 밑으로 내려가는 속성이 있어 다른 어종과 비교해 입질이 호쾌하다.

▲10센티가량의 애기 우럭. 우럭은 체장 23cm 이하는 놔줘야 한다. 사진만 찍고 얼른 놔줬다. (사진=전수영 기자)

10센티 정도 되는 우럭의 눈이 참으로 예쁘다. 우럭은 체장 23cm 이하는 놔줘야 한다. 간혹 생활낚시를 하시는 분들이 한 뼘도 안 되는 녀석을 챙겨가기도 하지만 진정한 낚시인들은 금지 체장을 잘 지킨다. 잠시 빌려 쓰는 자연을 훼손하면 안 되지 않겠는가. 얼른 놔주니 쌩하니 헤엄쳐 사라진다.

두 마리나 잡았으니 손맛은 볼 만큼 봤다. 미련 없이 주변 정리하고 자리를 떴다. 잠진도를 빠져나와 주도로를 합류하려는데 인근 을왕리 방향에서 차들이 잔뜩 밀려 있다. 수도권에서는 하루 일정으로 다녀오기 좋은 곳이 영종도다. 영종도는 맛집이 많은 곳은 아니지만 풍경을 즐길 곳이 많은 곳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피해 호젓하게 시간을 보낼 곳도 꽤 있으니 한번 다녀오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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