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입학 과정에도, 판검사 임용 단계에도 ‘아빠 찬스’가 있어

[뉴스케이프 공희준 기자] 사법시험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도 붙는 제도였다

한웅 위원장은 농부의 아들인 자신은 사법시험 덕택에 법조인이 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사진 김한주 기자)

한웅 : 사법시험은 예전의 학력고사처럼 공정성이 비교적 확실히 담보된 제도였습니다. 저는 사법시험을 거쳐 변호사가 됐습니다. 사법시험을 대체해 등장한 변호사 시험의 출제위원과 채점위원도 해봤으니 두 제도의 장단점을 비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셈입니다.

사법시험은 가정환경의 좋고 나쁨과 관계없이 응시생의 점수에 따라 철저하게 합격과 불합격이 나눠졌습니다. 반면에 로스쿨은 다릅니다. 입학전형 단계에서부터 최근 커다란 사회문제로 대두된 ‘아빠 찬스’와 ‘엄마 찬스’가 개입할 가능성을 완벽히 차단하기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물론, 학업능력이 두드러지게 떨어지는 사람을 로스쿨에 억지로 밀어 넣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실력이 비슷비슷한 경우에는 수험생의 실력 외적인 요소가 당락을 좌우할 위험성이 상존하는 게 솔직한 현실입니다.

저는 현직 변호사입니다. 제 아들이 법학전문대학원에 지원한다면 아버지가 법조인이 아닌 다른 경쟁자들보다는 분명 유리한 출발점에 설 수가 있습니다. 저는 제 아들과 달리 변호사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농부의 자식이었습니다. 제가 사법고시 제도가 아닌 로스쿨 체제에서 과연 지금처럼 변호사가 될 수 있었을지 저로서도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로스쿨의 첫 번째 문제점으로 우리나라의 기존 법률 체계와 상충된다는 사실을, 두 번째 문제점으로 신입생 선발 과정에서의 불공정한 부분을 지적했습니다. 이게 로스쿨의 모든 문제점일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로스쿨의 세 번째 문제점은 학생들이 로스쿨을 나온 이후의 단계에서 발생합니다. 로스쿨을 다녀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다음에도 또다시 부모 찬스가, 더 거창하게 말하면 ‘가문의 배경’이 새내기 변호사들의 진로와 성패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공하고 출세한 부모를 둔 신입 변호사들이, 유력 가문 태생의 젊은 변호사들이 판사와 검사로 임용될 확률이 상대적으로 훨씬 더 높아지기 쉽습니다. 로스쿨 신입생 전형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임 판검사 선발에서도 불공정한 사태가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판검사 임용의 공정성을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아직까지도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최근 힘없고 가난한 서민대중의 눈높이에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도, 승복할 수도 없는 판결들이 법원에서 잇따라왔다. 눈물 젖은 빵을 단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부유한 금수저 가정에서 나고 자란 변호사 시험 합격자들이 신규로 임명되는 판검사들의 대부분을 차지해왔다는 증거이리라. 로스쿨에 진학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춘 넉넉한 집안 출신의 판검사들이 법원과 검찰청을 머잖아 100프로 차지하게 될 전망임을 감안하면 서민들의 염장을 지르고 민중의 피눈물을 쏟게 만드는 황당한 검찰수사와 법원의 엽기판결은 앞으로 늘었으면 늘었지 줄어들지는 않을 듯싶다.

판검사 임명에까지 등장한 ‘아빠 찬스’

한웅 대안신당 서울시당 창당준비위원장은 로스쿨이 신분 세습화를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사진 김한주 기자)

사법시험 시스템에서는 사시에서의 점수와 사법연수원 성적을 종합해 판사와 검사를 뽑았습니다. 성적만 중시한 줄 세우기라는 한계는 존재했을지언정 선발의 투명성과 객관성, 즉 공정성은 충분히 지켜졌습니다. 로스쿨은 출신 성분의 범위와 다양성을 확대시키겠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도입됐습니다. 실상은 어떻습니까? 부모 잘 만난 특권층 자식들이, 여유 있는 부잣집 자제들이 주로 들어오는 그들만의 신분 세습의 공간으로 점점 굳어지고 있습니다.

남한사회에서 가장 많은 판검사를 배출한 고등학교가 유수의 외국어고등학교들이 된 일은 어제오늘 사건이 아니다. 조국 법무부 전 장관 파동에서 드러났듯 외고는 서민층 자제들이 가는 학교가 아니다. 외고는 없애되 로스쿨은 마치 성역처럼 절대로 건들지 않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결정은 마약은 계속 불법화하되 마약상인은 더 이상 처벌하지 않겠다는 짓처럼 앞뒤 안 맞는 자가당착의 극치이리라.

로스쿨은 대중추수주의에 빠진 참여정부가 당장 표만 되면 능사라고 믿고서 성급히 도입한 제도입니다. 사법개혁을 염원하는 국민들의 여론에 얄팍하게 편승해 만들어진 게 법학전문대학원이었습니다. 여기에는 국가 백년대계에 대한 고민과 성찰과 비전은 당연히 결여돼 있었습니다.

로스쿨을 도입하려면 이 제도가 작게는 법률 시스템에, 크게는 나라 전체에 미칠 전반적 영향과 파급효과를 사전에 신중하게 예상하고서 그에 대비한 청사진과 시나리오를 체계적이고 주도면밀하게 선제적으로 만들어놔야 했습니다. 참여정부는 이러한 중요한 준비작업을 완전히 생략했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역기능과 부작용이 야기됐습니까?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처럼 로스쿨이 설치된 상당수 대학들에서 법학과가 아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단지, 로스쿨만 외롭게 달랑 남는 파행적 구조가 돼버렸습니다.

학부 과정에서의 법학과가 없어지자 법률가를 지망하는 학생들을 위한 기초적 법학교육 체계 역시 덩달아 유명무실해지고 말았습니다. 법학 교육의 토대가 붕괴되고, 기초가 와해된 탓이었습니다. 정당하고 민주적인 법치를 통해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면 기본적 법학 지식의 학습과 축적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법학 교육의 내용도, 과정도 총체적으로 부실해지면서 10년 후가 걱정스럽고, 20년 후는 걱정스럽다 못해 공포스럽기까지 한 상황이 지금 우리나라 법조계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법학도 건축 못잖게 토대가 충실하고 기초가 탄탄해야만 합니다. 튼튼한 법학 지식의 뒷받침이 있어야 약자들의 권리를 믿음직하게 지켜주는, 국민들의 고충을 시원하게 해소해주는, 다양하고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효율적으로 조정하고 중재하는 유능하고 책임감 있는 법조인들이 지속적으로 배출될 수가 있습니다. 로스쿨 도입은 법학 교육의 이러한 근간을 치명적으로 훼손시켰습니다. 법학 교육의 기초와 토대가 무너졌으니 로스쿨이 뭐가 됐겠습니까? 사상누각이 되었습니다. 사상누각이!

한웅 위원장은 우리나라 법학 교육이 근본 없는 법학 교육이 되고 말았다는 대목을 거론하면서 몹시 괴롭고 심란한 표정을 지었다.

모래성과 다름없는 로스쿨에서 미래의 법조인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어떤 현상이 빚어지겠습니까? 이건 제가 변호사 시험의 출제위원으로서 또한 채점위원으로서 직접 현장에서 목격하고 체험한 일입니다.

형법을 예로 들면 범죄의 기본 개념에 대한 지식이 달리는, 범죄의 체계에 관한 이해도가 부족한 수험생이 변호사 시험 응시자의 절반이 넘습니다. 형법뿐만이 아닙니다. 민법의 가장 기본 개념을 이루는 ‘법률 행위에 대한 의사 표시’에 관한 공부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는 학생이 로스쿨 출신 수험생의 50프로를 웃돕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 1, 2, 3, 4, 5도 모르는 상태에서 고차 방정식을 풀겠다고 시험장에 호기롭게 나타나는 격입니다. 

지금 같은 로스쿨 체제에서는 충실한 법학 교육의 연속선상에서 판사와 검사와 변호사가 양성되지를 않고 있습니다.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토대와 기초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법학 교육을 완전히 들어낸 연후에 로스쿨이라는 외관만 그럴싸하게 장식한 구조물을 하늘 향해 높다랗게 올렸습니다. 제가 왜 10년 후는 걱정스럽고, 20년 후는 공포스럽다고 말하는지 이제 이해가 되실 겁니다.

문제는 경험이 아닌 실력

한웅 위원장은 법과대학을 없앤 후과로 우리나라 법학 교육의 토대가 무너졌다고 진단했다. (사진 김한주 기자)

우리나라 법학 교육이 정상적으로 발전해갈 길은 로스쿨 도입 강행의 여파로 인해 현재 사실상 봉쇄돼 있습니다. 저는 학부의 법과대학은 유지하면서 로스쿨을 들이는 게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습니다. 기존의 법률 체계와 상충되었기 때문입니다. 연역적 법학 이론이 뿌리내린 곳에 귀납적 로스쿨을 억지로 이식시켰기 때문입니다. 결정적으로, 법학과를 무리하게 없앰으로써 바람직한 법치의 보루와 밑바탕 역할을 해주는 법학 교육을 무자비하게 황폐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사법고시 출신들이 초기에 겪는 곤란함은 경험이 모자라서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로스쿨 출신들이 변호사가 되어서 직면하는 어려움은 경험 부족이 원인이 아닙니다. 실력이 달리기 때문입니다.

법학과가 건재했던 시절에는 법률가가 되고 싶다면 민법총칙에서 형법총칙까지, 법철학으로부터 형사정책에 이르기까지 탄탄하게 기초 교육을 받아야 했습니다. 학부 4년간 쉴 틈 없이 법학을 공부해야만 했습니다. 로스쿨이 생기면서 이 중요한 풀뿌리 과정을 그냥 건너뛰게 됐습니다. 1, 2, 3도 모르는 판국에 방정식 문제 풀기로 곧장 직행했습니다.

1, 2, 3, 4, 5는 무조건 가르치고 배워야만 하는 기초 중의 기초입니다. 로스쿨 찬성론자들의 주장은 1과 2를, 3과 4와 5를 몰라도 방정식을 풀 수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너무나 슬프게도 이들의 터무니없는 궤변이 결국에는 현실에서 관철되었습니다. 이들이 정부의 권력을 등에 업었던 덕분이었습니다.

법률가를 선발하고 양성하는 일은 국가의 최고 인재를 길러내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이 일에 백년 후의 미래까지 바라보는 장기적 안목과 거시적 시각이 요구되는 까닭입니다. 참여정부는 그런 안목과 시각이 없이 로스쿨 도입을 밀어붙였습니다. 한국사회의 특권층으로 오랫동안 간주되어온 법조인들의 기득권을 타파한다는 명분에서였습니다.

허나 나중에 어떻게 됐습니까? 기득권을 타파하자고 만든 로스쿨이 오히려 특권과 반칙을 확대재생산하는 온상이 됐습니다. 부와 권력, 명예와 지위를 대물림하는 기득권층의 아지트로 확고히 정착됐습니다. 그 대가로 법학 교육이 초토화됐습니다. 고시 낭인이 신장개업한 모양새인 로스쿨 낭인을 낳았습니다.

변호사 숫자는 물론 늘어났습니다. 로스쿨이 가져온 유일한 긍정적 성과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변호사 숫자가 늘어나는 대신 변호사들의 질은 되레 저하됐습니다. 법률시장의 서비스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던 도입 당시의 약속이 헛구호로 밝혀진 것입니다. (③에서 이어짐…)

저작권자 © 뉴스케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